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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30년새 변화없는 수능, ‘등급 나누기’ 빼고 무슨 역량을 키워줄까[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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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94학번 아빠와 2024년 수험생 아들

한국서 처음 수능 치른 94학번은
대학입학 후 디지털과 만난 세대

30년후 수능장 향한 이들 자녀는
AI시대 살지만 낡은 시험 그대로

일자리 잠식은 고학력도 못 피해
AI파고 넘을 수 있게 교육 바껴야


매일경제

수능 시험일인 지난 14일 대구 수성구 남산고에서 한 수험생이 가족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도 11월 셋째주 목요일이 오자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수능) 시험이 치뤄졌다. 이날이 오면 수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의 출근 시간을 늦춘다.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엔 전국에서 항공기 이착륙도 전면 금지된다. 너도나도 수험생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한국의 대단한 교육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993년 처음 실시된 수능은 어느 덧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지 30년이 넘었다. 이렇다보니 자녀의 입시를 치르는 부모 세대도 바뀌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력고사 세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90년대 수능을 치른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1993년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 94학번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디지털을 접했다. 이들은 스무살에 한글 타자 연습을 시작했고, 컴퓨터에 전화선을 꽂고선 천리안에 접속해 반쪽짜리 인터넷을 즐겼다. 1997년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개발한 한메일에 가입하며 또다른 세상을 만났다. 졸업할 즈음인 1999년엔 네이버가 등장했지만, 훗날 IT기업 인기가 치솟아 취업 시장에서 ‘네카라쿠배’ 선호 현상이 생길진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올해 수능장으로 향한 이들의 자녀 세대로 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올해 수능을 보는 고3은 2006년생으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은 모바일을 통해 전세계를 넘나 들며 자랐다. 인공지능(AI)의 쾌거인 챗 GPT의 안정화 베타 버전이 2023년 등장했을 때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을 뿐 더러, 빠른 속도로 체화하고 있다. 요즘 십대들은 주식 투자에도 관심이 많다 보니 ‘네이버, 삼성전자보다 엔비디아’라며 서로 종목을 추천해준다. 이들은 AI시대에 엔비디아가 어떻게 자신들의 용돈을 불려주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부모 세대와 다른 세상을 사는 아이들이 올해 수능 시험장에서 마주한 언어 영역, 수학 영역, 탐구 영역, 외국어 영역의 시험은 어떤가.

매일경제

수능 시험이 치뤄진 지난 14일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 강남구 휘문고등학교 교문을 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 [연합뉴스]


영역별 구성 과목과 점수 등 형식은 주구장창 변했지만 본질적으론 30년전 그들의 부모들이 마주한 문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수능이 처음 등장할 땐 교과서에 없는 지문과 문항으로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평가라도 나왔다. 하지만 결국엔 등급을 나누기 위해 서열화하는 수단으로 자리잡다보니, 사교육만 좋아할 킬러문항이 득세하며 교육을 더욱 망쳤다. 매년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가 제기되면서, 해마다 ‘운빨’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전세계가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인재 양성에 발벗고 나선다는 시대에 한국 교육의 민낯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30년엔 현재 일자리의 90%가 AI로 대체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단순히 블루칼라 직종 뿐 아니라, 검사, 고위공무원, 연구원 등 화이트칼라 직종도 예외가 없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도 의사·회계사 등 고소득·고학력 근로자의 일자리가 AI에 의해 빠르게 대체될 것으로 분석했다.

이같은 암울한 전망은 올해 수능 시험을 치른 세대들이 사회에 진입할 시기에 닥칠 일이다.

이젠 우리 사회가 미래 인재 양성에 책임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변혁의 시대는 쓰나미처럼 다가오는데, 기성 세대들이 ‘내 일이 아니다’며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될 노릇이다.

당장 대입을 대표하는 수능을 통해 어떤 역량을 기를 수 있는지, 문제가 있다면 학교 교육을 어떻게 전환할지 원점에서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다음 세대가 AI 시대의 파고를 넘을 역량을 키울 수 있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젊은 세대가 일과 삶에서 희망을 놔버리지 않게 사회가 역할을 다하는 것, 그것이 한국의 교육열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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