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정보 경험 없는 前 하원의원 털시 개버드 지명하자
미 정계 “러시아가 퍼뜨린 루머,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는데” 반발
18개 정보기관, 1000억 달러 예산 관리
해외 非개입주의 외교정책 선호...”러시아 침공은 나토 탓”
미 국가정보국장은 2001년 9ㆍ11테러 이후 개별적으로 움직이던 중앙정보국(CIA)ㆍ연방수사국(FBI)ㆍ국가안보국(NSA) 등 미국 정부의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직책으로, 모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의 예산을 관장한다. 또 비밀 문서의 등급 분류와 해제에 대한 최종 책임자이기도 하다.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대선 경선에도 도전....이후 공화당으로 당적 바꿔
트럼프는 13일 이 자리에 민주당 의원이었다가 탈당하고 작년 3월 공화당에 입당한 친(親)트럼프 인사인 개버드를 지명했다. 개버드는 이라크에서 2년 간 복무한 경험이 있는 육군 예비군(Army Reserve) 중령 출신이지만, 정보기관 경력은 전혀 없다. 2019년에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경선 막바지인 2020년 3월에 사퇴하고, 조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 8월 29일 위스컨신주 라 크로스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에서, 개버드가 트럼프와 함께 연설을 한 뒤 강단을 떠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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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버드도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지명된 뒤 “물론 워싱턴 DC의 늪[딥 스테이트]에선 반발이 있겠지만, 내 목표는 미국인의 안전과 안보,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 베테랑 정보관리들은 과거 개버드가 종종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발언과 행동을 했던 것을 들어, 그가 정보 수장이 됐을 때 정보를 왜곡할 가능성과 그의 자질 부족을 비판한다.
개버드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그 책임을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에 돌렸다. 그는 트위터에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하려는 것에 대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보 우려를 조 바이든 행정부와 나토가 인정했었더라면 전쟁과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나토에 가입했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또 다음 달에는 “미국 정부는 치명적인 살상용 병원균을 연구하는 우크라이나의 생물연구소 25곳에 투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수일 전에 러시아가 퍼뜨린 거짓 정보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소재 생물연구소들에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병원균이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IS)와 같은 이슬람 테러범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소련은 냉전 시절에 탄저균, 툴라레미아균 등 치명적인 세균 무기를 양성하는 생물연구소를 러시아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연방 내 곳곳에 설치 운영하고 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이들 시설을 둘러본 미 정보기관들은 너무나 허술한 보안 시설, 연구원의 낡은 보호 장비 등에 놀라 러시아를 포함해 구(舊)소련 연방 곳곳의 생물연구소 보안 강화에 지금까지 120억 달러를 썼다. 러시아는 재정적으로 고갈된 상태였고, 미국은 러시아에도 푸틴이 본격적으로 독재 집권에 돌입한 2009년까지 재정 지원을 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레오니드 쿠치마 당시 대통령(1994~2005년)이 자국이 보관하는 탄저균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 2005년부터 지금까지 2억 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개버드는 러시아가 퍼뜨린 거짓 정보를 그대로 트위터에 받아쓴 것이었다. 개버드는 또 민주당 좌파와 궤를 같이 하는 중동 비(非)개입주의 외교정책을 내걸면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주장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2015년 ‘이슬람 테러 격퇴’를 명분으로 독재자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양민을 학살하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자 이를 지지했다.
2015년 12월 하와이 호놀룰루의 태평양 미군 기념 묘지에서 소령으로 진급하는 개버드/Military Wi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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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친(親)트럼프 매체인 폭스 뉴스의 앵커 션 해너티가 “과대망상증에 살인 악당인 푸틴을 막기 위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야 하느냐”고 묻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격퇴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생각하기 불가능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트위터에는 “푸틴과 젤렌스키, 바이든 대통령은 지정학적 논의를 제쳐 놓고, 알로하(aloha)ㆍ존중ㆍ사랑의 정신을 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중립국이 되는 데 합의해야, 국민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썼다.
개버드는 또 민주당 의원 시절인 2017년 1월 시리아를 방문해,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두 번 만났다. 그해 4월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신경가스를 살포한 것에 대한 응징으로, 트럼프가 59기의 크루즈미사일 공격을 지시하자 “트럼프는 무모하다. 미국의 공격은 위헌적이고 경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 경선에선 자신이 독재자 알-아사드를 만난 것을, 트럼프가 독재자 김정은을 2018~2019년 세 차례 만난 것에 비유했다.
개버드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기밀 문서를 위키리크스(Wikileaks)에 유출한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과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에 대한 기소도 포기하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영 러시아 1 채널 “우리 걸프렌드” 농담
이런 개버드가 2019년 가망도 없는 미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자, 미국 언론보다 러시아 언론이 더 상세히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TV인 ‘러시아 1′ 채널의 선동 프로그램 진행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브요프는 2022년 10월 우크라이나의 생물무기에 대해 러시아와 같은 주장을 펴는 개버드를 러시아 요원이라는 뜻에서 “러시아의 걸프렌드”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개버드의 미 국가정보국장 지명이 발표되자, 트럼프 행정부 1기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은 트럼프가 미성년자 성관계 의혹으로 하원과 FBI의 조사를 받았던 매트 게이츠 하원의원을 법무장관에 지명한 것과 더불어 “역사상 최악의 장관급 지명”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 심슨 하원의원(공화)은 “그가 영리한 것은 틀림없다. 내 세계관이 개버드랑 다를지는 몰라도, 개버드 세계관이 도널드 트럼프가 원하는 것에 근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은 “푸틴의 호주머니 안에서 노는 개버드에게 미국의 모든 비밀을 넘겨주기를 원하느냐”고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정보기관과 소속 관리들은 정보 분석의 비(非)당파성, 백악관 정책결정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도 가공 없이 보고하는 객관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개버드의 임명이 전체 정보기관에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딥스테이트’ 미 정보기관의 평가 불신
이런 평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난데 없이’ 개버드를 지명한 것은 1기때 그가 정보기관과 겪었던 갈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또 종종 미 정보기관의 평가를 불신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 러시아가 자신의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과 관련한 비밀 정보를 해제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가 임명한 지나 해스펄 CIA 국장은 “미국의 정보력을 훼손한다”며 반대했다.
또 2018년 8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에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은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했다’고 내게 보고했지만, 방금 푸틴은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말했다. 나도 러시아가 왜 그래야 했을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임명한 정보 수장의 평가보다 푸틴의 말을 더 신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개버드가 미 정보기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고 믿는 ‘반(反)트럼프 딥스테이트’ 관리들을 청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트럼프는 2021년 4월 바이든 행정부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 “이란이 핵 개발을 하고 있지만, 핵폭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정보는 현재 없다”고 증언하자, “학교로 돌아가 더 배워라”라고 당시 트위터에 썼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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