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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용익의 모서리] 대학은 시작일까 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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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끝났다. 매년 반복되던 '수능 한파'도 없었고, 지진 같은 천재지변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험을 보다 말고 절망해 젊은 몸을 허공에 내던지는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었다. 수능에 대한 꽤 다양한 기억을 더듬다 보니 어느새 수험생들의 두 배가 된 나이가 실감 나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며 캠퍼스를 처음 걸었을 때 느꼈던 어떤 해방감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상당수도 그때의 나처럼 대학으로 향한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서울대, 아니 의대부터 순서대로 학생들이 들어차고 줄줄이 추가 합격과 편입학, 반수와 재수가 이어지게 된다. 3월이 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된다.

이것으로 긴 입시 지옥이 끝나고 모두 행복했다는 결론이 나면 좋겠지만 대학이라고 해서 뾰족한 답이 있을 리는 없다. 교육 기자로서 마주하는 기사 목록들부터가 그렇다. 올 초 시작된 40개 의대의 정원 확대 논란은 이제 내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고, 한때 소외받던 여성들의 교육기관으로 빛나던 여대는 약학·법학전문대학원 쿼터를 잡아먹는 원흉이자 공학 전환이 아니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마저 듣는 처지로 전락했다. 심지어 대구 지역의 한 사립대에서는 최근 '사회학과 장례식' 행사가 열리며 취업에 불리한 순수학문 연구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종말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대학을 일종의 '끝'으로 생각하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 뻔하다. 대다수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인 부동산의 가격마저도 학군에 따라 결정되고,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사회 입장권으로 기능한다. 의사처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입장권을 얻기 위해 가혹한 경쟁 속에 청춘을 허비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현실을 일개 대학생이 해결할 수는 없다. 막 입시를 끝낸 만큼 해방감을 느끼고 공부라는 행위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저학년 때 조금 놀다가, 입시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를 한 뒤 취업해 사회로 나가게 된다면 놓치는 것이 있다. 공부라는 개념 자체가 시험을 위한 일종의 수단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업 중 제시된 참고도서를 읽다가 학점과 관련 없이 재미를 느껴 비슷한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취업과는 상관없는 내용에 골몰하는 순간을 가끔씩이라도 가지길 권한다. 그럴 때 대학은 당신이 좋아할 수도 있는 공부를 알려주는 시작이 된다.

대학을 끝으로만 보는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학벌을 두고 으스대거나 타인을 나온 대학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어렸을 적의 성취를 축하한다고 답할 수 있다면 훌륭한 사회생활이겠으나 옆에서 보기에는 민망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제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당신이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 열아홉 청년들에게 충고랍시고 말을 건네는 어른의 모습 역시 민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대학이 끝이 아닌 시작이길 바란다는 말은 전해주고 싶다. 그 외에는 많지 않다. 소화력 좋을 때 튀긴 음식도 즐기길 바라고, 추후 운전할 계획이 있다면 면허를 따기에는 지금이 제일 좋다는 정도는 더할 수 있겠다.

[이용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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