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증언으로 재구성한
쓰레기 종량제 30년
환경부 공무원이 TV에 나와 봉투 하나를 쥐고 펄럭펄럭 흔들며 외쳤다. “이게 잘 찢어져야 되는 겁니다. 안 찢어지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손에 든 것의 정체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안 찢어져야 사용하기 편할 텐데, 잘 찢어져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 그의 모습은 KBS ‘아침마당’에서 생방송되고 있었다. 전국 단위의 종량제 도입 닷새째 되는 날. 이 공무원이 아침마당에 출연한 것은 정책 성패(成敗)의 ‘키’를 주부들이 쥐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구가 지난해 새롭게 디자인한 종량제 봉투. 북극곰이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일반 쓰레기 봉투, 재사용 봉투, 음식 쓰레기 봉투.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종량제가 곧 시행 30주년을 맞는다. 1995년 1월 1일 국가 주도로 시작된 종량제는 무려 ‘단 10일’ 만에 국민의 90%가 참여하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저게 가능한 일이냐”는 세계적 찬탄(혹은 경악)을 받았다. 하루 평균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시행 이전인 1994년 4만9191t에서 1년 만에 3만6052t으로 27%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재활용품은 8927t에서 35% 증가(1만2039t)했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의 일부 지자체에서도 종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일제히 실시한 건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
배경에는 불편을 감수한 국민적 희생과 시민 의식이 있었다. 종량제 시행 첫해 1월 3일부로 환경부 폐기물정책과장(현 자원순환정책과)을 맡은 이규용(69) 전 환경 장관의 증언을 통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종량제 안착 과정을 재구성했다.
그래픽=송윤혜 |
◇새해 벽두의 쓰레기 전쟁
“새해의 첫 출발이 쓰레기로 뒤범벅됐다. (…) 전국 주택가 골목길마다 처리비를 물지 않으려고 시민들이 미리 내다 버린 쓰레기로 산더미를 이뤘다.”(본지 1995년 1월 4일 자)
난산이었다. 신년 연휴가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본지는 1월 3일 당시를 “새해 벽두의 쓰레기 전쟁”이라 기록했다. 골목마다 쌀통이나 이불 등 온갖 쓰레기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12월 31일부터 1월 1일 사이 버려진 쓰레기는 평소의 3~4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쓰레기 홍수.
원인은 1월 1일 시작된 종량제. 주부 이모(62·서울 은평구)씨는 “그때는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린다’는 개념이 생경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쓰레기는 굴러다니는 아무 봉투에나 넣어 집 앞에 던지면 끝이었다. 고층 아파트의 집 안에는 1층의 대형 철제 쓰레기통으로 연결되는 통로(쓰레기 배출구)가 있어, 봉투에도 담지 않고 털어내면 만사 오케이였단다. 이 때문에 1~2층에서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이전에도 사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부과되고 있었다. 재산세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소득과 쓰레기양이 비례한다’는 원칙을 적용한 건데, 일괄 적용하다 보니 국민 입장에선 쓰레기를 줄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 모순을 개선한 것이 ‘버린 만큼의 비용을 지불한다(오염자 부담 원칙)’는 종량제.
그러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쓰레기봉투를 직접 ‘돈 내고’ 사는 건 엄연히 다른 법. 당시 20ℓ 쓰레기봉투 가격은 전국 평균 240원. 마을버스를 탈 수 있는 돈이었다. 연휴를 끼고 종량제가 실시됐기에 약국 등 봉투 판매소가 문을 닫아 봉투를 살 곳조차 마땅찮았다. 그리하여 법 시행 이전과 시행일 새벽, 집 안의 쓰레기를 몽땅 길거리에 버리는 난리가 벌어진 것이다.
◇전국이 “이 불편한 걸 왜 해”
“아니, 난 뭐 바보라서 돈 주고 쓰레기 버립니까?” “왜 느닷없이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요?” 새해부터 환경부는 민원 전화로 불난 호떡집이 됐다.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법 지키는 사람 따로 있고 안 지키는 사람 따로 있느냐’는 항의가 쏟아진 것. 가짜 종량제 봉투가 유통되고, 집 앞에 내놓은 봉투에서 쓰레기는 쏙 빼고 봉투만 훔쳐 가는 도둑까지 등장했단다.
“불편해 죽겠다” 전국이 아우성이었다. 함께 시행된 분리수거제에 대해선 “재활용품 구분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 “몰라서 못 버린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지침에 따라 수거함을 설치해야 하는 지자체조차 “수거함 확보가 어렵다” “현실을 모르는 지침”이라며 항의했다.
“잠시 탈모가 왔을 정도(!)”로 고통받던 ‘신임 과장’은 그리하여 아침마당 출연을 결심한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하는 일은 주로 주부 몫이었고, 이들의 마음을 잡아야 참여율이 획기적으로 오를 테니까.
환경부가 쓰레기 종량제 실시를 알리는 신문광고 |
◇불편해도 봉투는 터져야 한다
주부들의 가장 큰 불만은 “봉투가 너무 잘 찢어진다”는 것. 봉투가 곧 돈이다 보니, 한계치까지 꾹꾹 담아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환경 부담을 덜자는 종량제 취지를 살리려면 봉투가 ‘잘 터져야’ 했다. 청소차는 종량제 봉투를 수거한 뒤 압축한다. 이때 봉투가 터져야 내용물이 공기와 접촉해 매립지에 묻은 뒤 비교적 빨리 썩는다. 그래야 15~20년 뒤 해당 토지를 재이용할 수 있다. 즉, 봉투는 ‘청소차에 실리기 전까지만 터지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거기다 강도를 높이려 봉투의 플라스틱 성분 비율을 늘리거나 두껍게 만들면 분해 기간이 오래 걸려 또 다른 ‘비닐 공해’가 발생할 수 있고, 봉투 값도 오른다. 실험 끝에 봉투 두 종류의 두께를 0.015㎜, 0.025㎜로 하되, 오차 범위(10%) 내에서 ‘터질 수는 있되 가장 두껍게’ 만들기로 했다. 다만 터지지 않은 봉투를 낫으로 찢는 인원을 김포 매립지 등에 별도로 고용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주부들에겐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의 편리함과 환경 사이의 접점이 필요합니다. 주부님들의 이해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가 호소한 날 기준, 1월 1~5일 평균 전국 참여율은 64%. 광주광역시(87%) 등 지방 참여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지만 서울 40%, 인천 19%, 경기 48%로 수도권 참여율이 낮았다. 이 전 장관은 “종량제 봉투를 쓰던 사람도 무단 투기한 모습을 보고 그만두게 될 판이었다”며 “일주일 안에 전국 참여율을 90%로 올리지 못하면 실패한 정책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10일 만에 참여율 90% 넘어
“종량제는 획기적인 생활 혁명이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본지 1995년 1월 7일 사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본지를 비롯한 언론이 종량제의 필요성을 주창하기 시작한 1월 6일부터, 쓰레기 발생량은 하루가 다르게 줄기 시작했다. 6일 하루 김포 매립지에 반입된 쓰레기는 1만5900t으로, 종량제 실시 전인 1994년 12월의 하루 평균 반입량 2만1626t에서 26% 줄었다.
그 중심에는 불편함을 감수한 주부들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곳곳서 종량제 봉투 사용을 독려하는 반상회가 열렸고, 부녀회 조직이 분리수거를 하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수거함을 준비하지 못한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바구니를 마련해 재활용품을 수집하기도 했다. 시장에 갈 때 장바구니를 들었고, 샴푸와 그릇 세척제 등은 리필제품을 쓰기 시작.
그리하여 1월 9일, 마침내 전국 종량제 봉투 사용률이 평균 90%를 돌파했다. 전국을 뒤흔든 대소동이 끝나고, 10일 만에 종량제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편하다”면서도 지킬 건 지키는 우리 국민들.
◇포장 폐기물과 플라스틱 문제
이 사례는 대만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모범으로 주목받는다. 1990년대 중반 ‘쓰레기 섬’이라 불렸던 대만은 2001년 종량제를 도입, 수거차가 주 5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음악을 울리면 사람들이 쓰레기를 들고나와 수거차에 버린다.
현재도 종량제 도입은 쉽지 않다. 익숙함에서 오는 편의와 안락함을 일부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 2005년부터 종량제를 추진해 2차례 연기 끝에 올 8월부터 종량제를 실시하기로 한 홍콩은 결국 “불편한 데다 비용 부담까지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에 시행을 무기한 연기했다.
줄었던 쓰레기가 최근 몇 년간 다시 늘고 있는 건 개선해야 할 과제다. 온라인 쇼핑 증가로 인한 포장재와 배달이 일상이던 코로나의 흔적이다. 1994년 475kg이던 우리나라 1인당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종량제 시행 직후인 1995년 387kg으로 감소했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전면 실시한 2013년엔 353kg까지 줄었다. 하지만 2019년 이후 다시 400kg대를 넘어 2022년 446kg이 됐다. 이 전 장관은 “환경 문제는 개인이 불편을 감수하고 양보해야만 개선할 수 있다”며 “급증하는 포장 폐기물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때 됐는데 지금은 왜 안 되나. 다시 외친다, Again 1995!
[조유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