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14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열린 미국우선정책연구소(AFPI) 행사에 참석해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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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한다. 후보 시절부터 “말로 외치는 평화가 아닌, 힘을 통한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를 배척하고,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있다.
반면 많은 비판자들은 윤 대통령의 이러한 외교정책 기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힘’을 추구한 결과 북한(조선)도 힘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선의 핵무력이 증대·발전했고 러시아와의 군사동맹도 부활했다.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평화’를 쫓은 결과 더 큰 힘이 한국을 압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추구한 것이 ‘힘에 의한 평화’인가? 그가 희구한 것은 ‘힘이 센 강자에 기댄 평화’가 아닌가. 그리고 그 ‘평화’를 위해 강자에게 아낌없이 주자는 것 아닌가. 해서 윤 대통령의 트럼프 2기 대미 정책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트럼프의 승리로 2차 대전 이후 ‘미국 리더십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되자마자 뉴욕타임스의 외교안보 대기자 데이비드 생어는 단언했다. 민주주의라는 기치 아래 군사동맹을 전세계적으로 구축하여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해오던 미국의 리더십이 막을 내릴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트럼프는 1기에도 이 전후 질서를 흔들려고 했으나 행정부 안팎에서 저항과 전복을 겪었다. 이제 그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작심한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차기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고, 군 장성과 고위 관료들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 트럼프 2기는 진정한 ‘미국 우선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될 조짐이다.
잘 가꿔진 정원이 갑자기 정글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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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킹스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이 우려한 대로 ‘정글의 귀환’이 이뤄지는 것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70여년간 미국이 주도해서 만들고 유지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나름 잘 가꿔진 ‘정원’이었다.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서 서유럽과 일본 경제의 부흥을 끌어냈고, 생산력과 시장의 힘으로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이를 잘 관리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와 규칙들을 구성해 ‘규율에 기반한 세계질서’를 운영했다. 그리고 이 질서를 지키는 ‘세계경찰’과 그 동맹국들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더 이상 그 ‘정원’에 미련을 갖고 있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과 동조국들을 규합해서 세계질서를 유지해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미국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렁에 빠졌고, 이스라엘은 거리낌 없이 대량 학살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해보지만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줄지 않는다. 하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정원’을 아예 ‘정글’로 재편하려 한다. 힘을 노골적으로 구사하여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의 부상은 필연이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경제성장에 가속도가 붙은 중국은 2016년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점유하는 비중은 1985년 22%였던 것이 2024년 15%까지 떨어진 반면, 중국은 1985년 3%도 되지 않던 비중이 거의 19%까지 팽창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런 추세가, 예측 가능한 2029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나의 지표로 경제력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낙엽이 하나 떨어지면 가을이 머지않음을 안다.
미국 스스로가 국력의 쇠퇴를 가장 먼저 알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바마 정부에서 벌써 ‘아시아 회귀’를 선언, 이 지역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에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중국이 아파할 곳만 골라서 장벽을 높이 쌓았다. 다종다양한 안보협력 틀을 구성하여 ‘격자형’으로 중국을 둘러막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중국의 국내총생산액이 미국의 국내총생산액을 4조달러 정도 능가했던 것이, 2023년에는 7조달러 이상으로 그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전쟁’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바이든 정부의 중국 수입품 제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미국보다 더 빠른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믿었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 수도
이러한 변화는 미-중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4년 현재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7개국(G7)이 점유한 세계경제 비중은 29%인 데 비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점유 비중은 34%로 소위 ‘선진국’의 경제규모를 앞섰다. 국제통화기금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어 2029년에는 G7은 27%, 브릭스는 35%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0년에만 해도 세계경제의 절반 이상(52%)을 차지했던 G7의 경제규모는 그 절반으로 추락했고, 당시 11%밖에 되지 않던 브릭스의 점유율은 세 배로 약진한 것이다. 미국의 ‘정원’에서 함께 크던 ‘꽃’들은 시들어가고 거름 정도로 여겼던 ‘잡초’들이 거목이 된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어떻게 대처하려 하는가? 미국이 아직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분야가 남아 있다. 군사력이다. 이순신에게 남아 있던 13척의 배 정도가 아니다. 국방비만 보더라도 미국은 세계 2위에서 11위까지의 10개국 국방비의 합과 맞먹는 액수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명료하다. 미국의 방패 안에 있는 국가들에는 에누리 없이 수수료를 챙길 것이다. 동맹국을 현금인출기화하는 것이다. 미국의 창끝에 있는 국가들에는 최대의 양보를 압박하거나 출혈을 강요할 것이다.
해서 지금의 세계질서는 매우 불안정하다. 트럼프 2기에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다. 오직 ‘가장 센 놈’에게만 기대는 윤석열 정부는 한국을 불안정의 단층으로 밀고 있다. ‘가장 센 놈’이라고 확신했는데, 알고 보니 썩어가는 동아줄이라면 한반도는 그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감동적인 동화다. ‘아낌없이 주는 대통령,’ 그것도 국민의 것만 아낌없이 주는 대통령은 공포 그 자체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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