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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수능 포기한 18살 소녀, 아픈 아빠 곁에서 지켜낸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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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병원에 입원한 장철호(가명·66)씨를 옆에서 돌보던 딸 민서양. /이랜드복지재단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아빠 곁을 지키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19살 민서(가명)의 목소리에는 작년 그날의 단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전국의 수험생들이 대입을 향해 달려가던 그때, 한 소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이 가족의 운명까지 바꿔놓았다.

12년간 자동차공업소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해온 장철호(가명‧66세)씨는 작년 그날을 떠올렸다.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복통으로 장씨는 의식을 잃은 채 수술실로 향했다. 담낭 절제술로 시작된 치료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패혈증이 찾아왔고, 수술 후 합병증으로 위중한 상태가 이어졌다.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000만원을 넘어섰다. 12년 전 이혼한 아내는 모든 지원을 거부했고, 첫째 딸과는 이혼의 충격으로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퇴원은 엄두도 낼 수 없었고, 병원비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민서는 9월 모의고사가 끝난 그날을 기억했다. 성적을 확인하고 있는데 아버지 장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민서는 “시험지에 동그라미 치던 손이 떨려서 펜을 놓쳤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수능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 교실에는 ‘디데이’ 카운트가 걸려 있었다. 담임 교사는 “지금 성적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말렸다.

하지만, 민서의 발걸음은 교실이 아닌 병실을 향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가 아닌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 달 70만원의 알바비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역부족이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민서는 “오전에는 병실에서 아빠 간호하고,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했다. 버스 안에서 참고서 보다가 졸기 일쑤였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학 진학의 꿈을 놓지 않았다. 병실 의자는 독서실이 되었고 메모지 뒷면은 수학 공식을 정리하는 노트가 됐다.

다행히 정부의 긴급의료비 지원으로 900만원 정도의 치료비가 해결됐다. 하지만 여전히 300만원의 병원비가 남아있었다. 이때 이랜드복지재단의 ‘SOS 위고’ 프로그램이 희망의 손길을 내밀었다.

남은 치료비 전액이 지원되었고, 장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안정적인 치료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민서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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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양이 도움을 준 'SOS 위고' 측에 보낸 감사 편지. /이랜드복지재단


민서는 끝까지 학업을 마치고 원하던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는 “친구들이 보내주는 단체 카톡 문제 풀이가 제 유일한 공부였다. 교실 창가에 걸린 디데이 숫자가 자꾸 떠올라서 한참 울기도 했다”며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고 했다. 이어 “아빠가 깨어나면 ‘저 이제 대학생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며 “이제는 제가 받은 도움을 다른 분들께 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현재 장씨는 요양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장씨는 “딸 덕분에 새 삶을 살게 됐다”며 “이제는 제가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고 했다.

때로는 가장 어두운 순간이 우리를 더 밝은 곳으로 인도한다. 민서의 선택이 그러했듯, 우리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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