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3 진출한 韓 대기업, 블록체인 사업 축소…산업 생태계 고사 위기
기술 갖춘 블록체인 스타트업도 같이 '휘청'…결국 가상자산 투자자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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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요즘은 기술력 있는 곳들도 어려워요. 1세대 블록체인 기업들은 인프라 대신 개발해주고 지갑 대신 만들어주는 데만 매진했는데, 요즘은 블록체인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고객사들이 완전히 줄었잖아요."
최근 들어 해외 기업들의 리서치 의뢰만 받고 있다는 한 블록체인 리서치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수요를 찾아볼 수 없기에 해외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의 의뢰만 받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술에 대한 수요도 없는데, 리서치에 대한 수요는 더 없다는 것이다.
한때 '잘 나갔던'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들의 주요 고객사였던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축소한 영향이 컸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부터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 고스란히 떠앉게 됐다.
국내 대기업, 블록체인 사업 축소…스타트업도 '휘청'
지난 2021년 '대체불가능토큰(NFT) 붐'이 일 당시 위메이드는 블록체인 관련 인력 위주로 200여명의 경력 사원을 채용했다. 그랬던 위메이드가 최근에는 두 자릿수 규모로 인력을 감축했다.
또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엑스는 영위하고 있는 사업이 카카오톡 내 가상자산 지갑인 '클립'뿐이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사업을 독립 법인인 크러스트로 이관한 이후, 사업 범위를 점점 축소하더니 지난 8월 NFT 큐레이션 갤러리인 '클립드롭스'도 외부 기업에 매각했다.
이는 두 회사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웹3에 뛰어들었던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점차 축소하는 분위기다. 규제당국의 철퇴가 국내 기업만을 향한다는 지적이 업계 내에 퍼지면서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2년 전 위믹스가 상장폐지됐을 때부터 업계 내에선 한국 기업이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물론 위믹스 유통량에 문제가 있던 건 사실이지만, 운영진의 정체조차 공개되지 않은 해외 밈 코인이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해외 '잡코인'에도 같은 잣대가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업을 축소하는 것은 국내 기업뿐이라는 것이다.
또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플레이투언(P2E) 게임 등이 막혀 있는 이례적인 규제 환경 또한 국내 대기업들이 사업을 축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시장을 발판 삼아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데, 정작 국내에서부터 사업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업계 분위기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 2022년 블록체인 기업 중 이례적으로 큰 규모로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던 A사는 최근 인력을 절반 이상으로 줄였다. 한때 웹3 산업에 진출하는 대기업들 대부분이 A사 지갑 솔루션을 쓸 정도로 고객사가 많았으나, 웹3 진출 기업이 거의 사라지면서 매출도 크게 줄어든 탓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더 심각하다. 이들 역시 스타트업이지만, 최대 4~5개만 남고 전부 사라질 위기다. 올해 7월부터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코인마켓 가상자산 거래소는 줄줄이 문을 닫았으며 원화마켓 거래소 중 고팍스도 자본잠식에 빠져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 보호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나온 법은 이용자보호법이 아닌 사실상 가상자산 거래소 단속법"이라고 토로했다.
남은 건 투자 열기뿐…거래 환경 더 악화될 수도
이처럼 국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모두 흔들리고 있지만, 국내 투자 열기는 크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최근 들어 '김치프리미엄(국내 가상자산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현상)'이 줄고, 1위 거래소인 업비트의 거래대금이 감소하는 등 예전에 비해선 열기가 덜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업비트는 일 2조원대, 빗썸은 일 1조원대 거래대금을 유지 중이다.
이에 국내에 블록체인 기업 생태계는 사라지고 투기성 자금만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이른바 '정보 거래자'인 법인, 기관투자자는 차단되고 개인 투자자만 이용할 수 있는 국내 거래소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소외된 오래된 코인들이 이유 없는 급등락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미 위주의 투기성 거래를 하는 개인들이 많아지면 온라인 도박 게임과 같은 투자 환경이 조성된다"고 비판했다.
국내 가상자산 발행사 및 스타트업이 사라지고 있는 만큼, 해외 가상자산 프로젝트만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한 가상자산들이 국내 거래소에 상장하면, '펌프 앤 덤프'를 통해 발행자와 유통업자만 배를 불리고, 순진한 개미들은 손해를 떠안는 구조가 된다. 2017년의 모습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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