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무산된 한중정상회담 개최
트럼프 귀환에 양국 협력 필요성 커
한미 동맹 유지 속 실리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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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한중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개별 만남을 가졌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스쳐 지나가며 1분 남짓 만난 것이 전부였다. 당시 양국은 일정 조율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에 집중하던 시기였고 중국과는 협력할 만한 의제를 마련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역시 한국에 먼저 손을 내밀 만큼 긴급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좋은 판이 깔렸지만 아쉬울 것 없던 한중 양국은 다음을 기약했다.
한중 양국 정상은 15일(현지 시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조우했다. 이번에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이 열린 후 꼭 2년 만이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반도 정세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가속화 등 양국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특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데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후순위로 밀렸던 정상회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만남의 필요성이 커졌다. 트럼프 2.0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중국은 대응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군 확보를 위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에도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은 특히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교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비자 면제를 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가 원칙인데도 중국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무비자 혜택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일본에 허용했던 무비자 조치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격 금지됐고 지금까지 풀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4개월간 공석이던 주한 중국대사도 중량급 인사로 평가되는 다이빙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를 내정했다. 국장급 인사를 선임했지만 유엔에서 활약하던 다이빙 내정인의 이력을 보면 무게감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트럼프 2.0 시대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비해 주변 국가를 압박하던 ‘전랑(늑대전사) 외교’에서 벗어나 한층 유화적인 ‘판다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떠한 정책을 펼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했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될 경우 한국은 희생을 강요당할 수 있고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협력은 지정학·일방주의·보호주의의 경향 증가와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경제적 세계화는 변함없는 추세이며 세계화를 막고 ‘모든 종류의 변명’으로 고립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후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고립주의’를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 2기에서 더욱 노골화할 관세 및 방위비 압박,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의 유화책 속에서 한국은 더욱 중심을 잡고 국익 중심의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북한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과 협력해야 하지만 혈맹 관계인 북중 관계 역시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이어가면서 중국의 심기도 살피며 실리를 확보하는 고차원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에 난도 높고 중요한 과제가 떨어졌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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