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에 입소하든, 병원에 입원하든 돌봄을 받는 처지가 되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하고, 졸리지 않아도 자야 하고, 마음대로 누굴 만날 수도 없다. 자녀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려 입소했다가 ‘친절한 감옥’이라며 집에 돌아온 어른도 봤다. 오래 산다기보다 느리게 죽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더욱이 콧줄을 꽂거나 기저귀를 차기라도 하면 내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하나도 가질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노인 실태조사를 조목조목 분석해 발표했다. 그 보고서 내용은 우리나라 노인들의 ‘독립선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몸이 아프더라도 ‘자녀 또는 형제자매와 같이 살겠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가급적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48.9%)고 했고 자녀와 같이 살기보다 차라리 노인 요양시설에 입소(27.7%)하거나 노인 전용주택으로 이사(16.5%)하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함으로써 노후에 존엄을 잃지 않고 자녀의 돌봄 부담도 덜어주고 싶다는 뜻이다.
▷1990년대만 해도 내 집에서 나이 들고, 내 집에서 죽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2000년대 들어선 20%대에 머물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돌봄 수요가 커졌고,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으로 요양시설이 급증했다. 돌봄과 죽음은 자연스럽게 집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에 적응한 방법이었겠으나 노후 삶의 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는 해법은 국민 대다수가 ‘병원 객사’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내 집에서 살다가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지역사회에 기반한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해 내 집에서 나이 들고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해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는 돌봄평가기관(CIZ)이 노인마다 맞춤형 케어 프로그램을 짜서 가까운 시설과 연계해 준다. 만약 치매 노인이라면 주간 돌봄시설에서 텃밭을 가꾸고, 친구를 만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식이다. 일본은 몸이 불편해 이동이 힘든 노인 대신 의사와 간호사가 집집마다 왕진을 다니는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노인들이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오래 집에서 머물도록 돕는 것이다.
▷노인들의 독립선언은 결국 내 집에서 ‘웰빙’을 하다가 ‘웰다잉’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소박한 한 끼를 스스로 차려 먹고, 가족이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질병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하루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요양시설이나 병원을 무작정 늘려 돌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돌봄과 죽음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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