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예술혼으로 승화한 일본의 나뭇잎 조각가 하시모토 겐지가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나뭇잎에 토끼·고양이 등과 함께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응원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 고단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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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 0.05㎜ 펜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칼로 정교하게 조각하는 ‘리프 아트(Leaf Art)’에 일본이 열광하고 있다. 하시모토 겐지(38·橋本賢治, 활동명 리토·사진)는 손바닥보다 작은 잎에 대입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응원 메시지를, 인기 만화 주인공 도라에몽을 새기는 ‘금손’이다. 올해 6월 일본 후쿠시마(福島)에 세계 최초로 나뭇잎 미술관을 연 그를 중앙일보가 국내 언론에서는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6년 전만 해도 그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 진단을 받은 30대 무직자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시집, 골판지 공장, 화과자 가게 등에서 일했지만, 일머리가 없다고 직장 선배들에게 꾸중 듣기 일쑤였다. 매장 내 물건 위치가 조금만 바뀌어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일에 몰두하면 이번엔 일처리가 너무 느리다는 혹평을 받았다. 몇 개월 못 가 직장에서 해고되는 나날이었다. 마지막 일자리를 잃은 직후엔 통장에 2만엔(약 18만원)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고서야 그간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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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스페인 작가의 나뭇잎 아트를 보고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나뭇잎에 원하는 그림을 새겨 넣는데 하루가 걸릴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요령이 생겨 속도가 붙었다. ADHD의 특징인 ‘한 가지에 과도할 정도로 집중한다’는 점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매일 아침 작업을 시작해 완성하면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다. 하늘과 나뭇잎 등 자연까지 담아 내기 때문에 그의 사진 속에는 계절이 살아 있다는 평을 듣는다.
팬이 늘면서 SNS 팔로워도 59만명이 됐다. 작품 한 점에 30만엔(약 270만원)을 받기도 했다. 매년 나뭇잎 작품이 들어간 달력을 만드는데, 올해까지 누적 30만부가 팔렸다. 2021년부터 일본 내에서 70회 넘게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을 보러온 관객들과 소통하고, 따뜻한 관람평을 듣다 보면 비로소 자신이 있을 곳을 찾은 기분이 든다. 그는 “지금은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이라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장소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ADHD가 있어도, ‘보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약점을 날카롭게 벼리면 언젠가 자신만의 강점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혼나기만 하다 보니 화도 많이 났고 막막한 삶이었다”면서 “하지만 나뭇잎 아트를 하면서 그동안 단점이었던 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이 ADHD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아직 해외 전시회를 연 적이 없는 그는 “한국에도 나뭇잎 아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면서 “조만간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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