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국내 자금이 미국 주식과 암호화폐로 쏠리는 현상이 커지고 있다. 예·적금을 깨고 대출 받은 자금도 일부 포함됐다.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가격이 오를 자산에 투자)’ 여파에 국내 유동성이 해외로 이동하면, 환율 변동성 등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4일 기준 요구불 예금 잔액은 587조6455억원으로 지난달 31일(597조7543억원)보다 약 10조1088억원(1.7%) 줄었다. 통상 월급 통장을 의미하는 요구불 예금은 증시나 집값이 들썩여 자금이 쏠릴 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요구불 예금뿐 아니라 만기가 있는 적금까지 깨서 돈을 마련하는 조짐도 보인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적금 잔액은 38조9176억원에서 38조1305억원으로 약 7871억원(2.0%) 감소했다. 1년 만기 적금 금리가 연 3%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투자처로 돈을 빼간 것으로 풀이된다.
돈을 마련하려 아예 빚을 내는 사람도 많았다. 5대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신용한도 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총 38조8657억원에서 39조6179억원으로 7522억원(1.9%) 늘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통상 대형 공모주 청약 등이 있을 때,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적금이 줄거나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늘어난다”면서 “이번에는 트럼프 효과로 미국 주식과 암호화폐 가격이 오르자 여기에 투자하기 위해 관련 자금 등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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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트레이드’에 심상찮은 국내 유동성…환율 변동성 더 키울 수도
실제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미국 주식 보유액은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 7일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1035억1000달러(144조5000억원)로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그 이후 미국 주식 보유 금액 증가세는 다소 주춤했지만, 지난 14일(1000억7900만 달러)에도 여전히 1000억 달러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도 뜨겁다. 13일 기준 5대 암호화폐 거래소의 지난 24시간 총거래 대금은 34조6000억원으로 같은 날 코스피·코스닥의 거래량 합산액을 넘어 섰다.
특히 이날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하루 거래액만 25조원에 달할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였다.
국내 증시 투자자금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내 증시 예탁금은 지난달 31일 기준 50조5866억원에서 트럼프 당선 직후인 이달 6일 49조8900억원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코스피가 2400선까지 내려앉는 등, 주가 하락 폭이 커지자 지난 14일에는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예탁금은 52조9552억원으로 다시 불어났다.
다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수출 중심의 국내 기업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국내 증시 외면 현상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12일 국제금융센터는 ‘트럼프 신정부 정책 주식 영향’ 보고서에서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당분간 미국과 비(非)미국 주가 격차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짚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 대비 원화값이 1400원대까지 떨어진 데에는 국내 자금의 미국 주식과 암호화폐 쏠림도 한몫을 했다”면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실제 취임해 정책 불확실성이 사라져야, 국내 증시로 투자 자금이 다시 돌아올 여건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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