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운전한다. 그말은 즉, 끼어들기도 하고 사소한 이유로 경적을 울리며 다른 운전자가 끼어들 틈을 좀체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날 옆자리에서 아내가 말했다. “남편, 한국 사람 다 됐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닌데. 물론 이런 내 모습이 싫다. 공공 의식을 갖고 먼저 친절을 베풀고 싶다. 하지만 혼자만 친절하다면 바보가 돼 버린다.
살벌한 운전 문화는 운전자를 볼 수 없는 ‘선팅’도 일부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선팅을 규제하며 소위 유명인이 아니면 선팅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차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게 선팅을 한다.
필자의 나라 영국에선 운전할 때 상대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는 일이 흔하다. 상황에 따라 부끄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행동하는 주체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이는 객체가 된다는 의미니까. 이기적으로 운전하다가는 냉담한 시선을 받아 나쁜 사람이라는 객체가 될 수 있기에 아무래도 조금 더 배려하려는 의식을 갖게 된다.
영국에선 선팅이 불법이다. 유명 래퍼 스톰지(Stormzy)는 최근 재판에서 차량에 짙은 선팅을 한 것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한 죄도 가중돼 더 강력한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선팅 필름이 있으면 내부가 보이지 않아서 운전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사람들은 댓글에 왜 그렇게 많은 악플을 다는 걸까? 익명성과 거리감 때문이다. 선팅도 비슷하다. 부끄러움 없이 본능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의 익명성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소설 ‘마지막 왕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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