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향상, 선진국 요건
양극화 해소도 병행해야
조창원 논설위원 |
나라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강의 기적으로 선진국 문턱을 겨우 넘어섰는데 다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통칭해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고들 한다.
국가 경제의 발전 단계로 볼 때 '중진국 함정'이란 표현을 쓴다. 이 개념을 확장해 보면 우리 경제가 고민하는 지점은 '선진국 함정'이다. 중진국 함정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현 수준에 정체되거나 아예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반면 선진국 함정은 성장세가 지속가능하지 못하거나 중진국 수준으로 역행하는 현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선진국 함정에 빠진 국가들로 유럽 일부 국가들과 일본을 꼽는다.
최근 한국고등교육재단이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포럼에서도 선진국 함정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겼다. '대한민국이 꿈꾸는 혁신적 품격 사회'를 주제로 내세운 이번 포럼에선 과거와 미래 한국의 간격을 좁히는 혜안을 모색했다. 특히 경제 파트에서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며 궤적을 뚫고 지나간 개념이 선진국 함정이다.
중진국 함정이든 선진국 함정이든 탈출의 모멘텀은 성장이다. 그렇다면 성장 요인만 찾아내면 되겠다 싶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많아서다. 개도국이 중진국 함정을 탈출하려면 자본과 노동을 힘껏 투입해 성장을 끌어올리면 될 일이다. 그런데 복합 위기에 놓인 선진국 레벨에선 이런 성장 공식이 무용지물이다. 정혁 서울대 교수는 소득이 높아져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가 낮은 생산성 성장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못한 현상을 선진국 함정으로 본다. 중진국과 선진국의 요건이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국가 경제발전 단계가 올라갈수록 생산성 성장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점이다.
시야를 노동 시장으로 좁혀 살펴보자. 인구가 급감하면 자연히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 대안으로 실버 세대의 현장직 활용과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대안으로선 맞지만 생산성 성장 면에선 오답이다. 노년층의 현장 투입은 경로 의존성에 빠질 수 있어서다.
기존의 업무 방식을 유지하려는 성향 탓에 혁신은 없고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이민을 적극 받는 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고급 이민 인력이 유입되어야 생산성 성장에 도움이 된다. 단순히 노동력 숫자를 더 늘리거나 자본을 축적해 성장 엔진에 불을 댕기는 건 선진국 단계에선 안 통한다는 얘기다.
물론 생산성만 높인다고 선진국 함정 문제가 풀린다는 건 아니다. 선진국 함정은 소득과 복지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반면 양극화도 심화된 복합위기 국면이다. 생산성 성장과 양극화 해소 간 균형점을 찾으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가령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견고한 사회안전망도 탄탄히 구축해야 선진국형 성장이 가능하다. 노동 유연성과 사회 안전망을 충돌의 이슈로 보는 관점은 중진국 함정 탈출 단계에서나 통할 접근법이다.
문제는 선진국 함정을 논하는 자체가 우리 사회에선 어색하다는 점이다. 중진국은 분명히 아닌데 선진국이라고 선뜻 규정하지 못하는 인식에 갇혀 있어서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선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중진국으로 퇴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두려워한다.
실제로 저성장 기조에다 초저출산, 과도한 부채, 양극화 등 선진국 함정을 가리키는 전 항목에서 역대급 낙제점이다. 이 와중에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은 맹렬하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 평균치를 개발도상국이 도맡을 정도로 그 성장 속도가 매섭다. 우리의 처지는 선진국 우등반에 진입한 신입생이 곧바로 열등반으로 강등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꼴과 같다.
우리 사회는 선진국 함정 리스크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 승부를 걸어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는 성장엔진과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사회적 공감 근육이 동시에 작동할 때 선진국 함정을 건너 뛸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헤쳐나가야 할 숙명의 길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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