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창사70주년 특별기획: '아이가 있는 삶, 미래와의 협상'⑩]
1990년대 일본에서 '공동육아'를 실행했던 탐방記
지난 9월 현지서 가노 호코·쓰치 모자와 공동양육자들 집단인터뷰
돌이 안 된 아들 '함께 키울 사람 있냐'며 역전에서 전단지 돌린 엄마
호코(母)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 1:1의 닫힌 관계 되고 싶지 않았다"
취업도, 연애·결혼도 못한 2030 청년들이 주된 '돌보미'로 육아에 동참
쓰치(子) "당시 느낀 풍경, 돌봐준 얼굴들 떠올라…'가족' 정의가 중요한가"
▶ 글 싣는 순서 |
①"이기적 MZ라고요?"…청년이 말하는 '출산의 조건' ②"'아빠 껌딱지', 레알 가능한가요?"…主양육자 아빠들의 이야기 ③"'우리 아버지처럼'은 안 할래요"…요즘 아빠들의 속사정 ④[르포]"MBTI 'T'인 아빠는 육아 젬병?"…'파더링' 현장 가보니 ⑤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0년 후 나는 어떤 아빠일까" ⑥"'또' 스웨덴?"…30대 싱글여성 셋, '복지천국' 찾은 이유 ⑦"첫 데이트서 '더치페이'한 남편"…'선(線) 있는' 다정한 육아 ⑧"몇 살이면 꼭 OO해야 한다? 그런 것 없어"…'근자감' 배경엔 ⑨"'불평등하려고' 열심히 사는 한국, 출산절벽일 수밖에…" ⑩약 30년 전 낯선 이들과 아이를 길렀던 엄마의 사연 (계속) |
1995년 일본 도쿄, 싱글맘 가노 호코는 길거리에 공동육아 돌보미를 모집하는 전단을 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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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육아 참가자 모집 중. 가노 쓰치. 1994년 5월 3일생 남자. 음악과 전철을 좋아함(아마도). 나는 쓰치를 만나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만 틀어박혀 종일 가족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공동육아'라는 말에서 공동(共同)은 대체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평일 저녁(오후 5시 반~10시) 아이를 돌볼 사람, 계시나요?" -가노 호코-
역전(驛前)에서 뿌린 이 전단을 통해 당시 20~30대였던 청년들이 한 집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동양육 생활이 시작됩니다.
사례를 접한 기획팀은 궁금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아이를 돌볼 이들을 '무작위'로 모집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그렇게 결심했던 배경은 무엇이었고, 이와 같은 양육 과정은 과연 '정상적'이었을까요. 편견과 불신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던 기획팀은 가노 호코와 가노 쓰치 모자(母子)를 직접 만나 묻고 싶었습니다.
1995년, 쓰치가 생후 8개월일 때 호코는 파트너와 헤어져 따로 살 결심을 한다. 호코는 배냇머리가 빠진지 얼마 되지 않은 갓난아기를 데리고 가마쿠라에서 히가시나카노로 거주지를 옮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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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소재 자택에서 기획팀과 인터뷰 중인 가노 호코와 가노 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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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고 싶지 않던' 싱글맘, 고립에서 생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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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코: "저는 제 어머니랑 그렇게 사이가 좋거나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아이를 키운다면…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아들을 길러야 했기에 호코는 돈을 벌기 위해 수도검침 일을 시작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수도검침원 대부분은 여성이며 비정규직이다. 그녀가 받았던 월급은 약 14만 엔으로 95년 당시 일본 월평균 임금의 35% 수준이었다. 이중 4만 엔은 집세로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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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코: "제가 쓰치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 역시 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지내고 싶었고, 아이도 그렇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왠지 무서웠어요. 그렇게 (엄마와 아이가) 1대1이라는 닫힌 관계(로 지내는 것이요)…성격인지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낯선 청년'들이 쓴 육아노트
공동육아를 위해 모인 돌보미들 대다수는 20·30대로, '취직을 못 했거나 제대로 일하는 게 어려운, 또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고, 연애나 결혼·섹스를 못 하는', 즉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없었던 청년들이었다. 이른바 '낙오연대(다메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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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소재 기획팀 숙소에서 취재진과 집단 인터뷰 중인 가노 호코(맨 왼쪽부터), 카게야마 쇼지, 사토 나미에, 타카하시 라이치, 가노 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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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치(돌보미 중 한 명): "모자 2명이 살고 있는 집에서 공동육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놀러갔는데 작은 방에 빽빽하게 어른들이 모여서 뭔가 마시거나 먹는 것을 보고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싶었죠.
저는 당시 4살짜리 딸이 있었는데, 아이와 둘이 사는 게 불안했어요. (엄마로서) 굉장히 고정화된 역할이랄까, 도망갈 곳이 없다고 할까. 공적 서비스도 숨 막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타자와 함께, 어른이 여럿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어요."
호코: "일본에서도 어른이 어린아이들을 학대하는 것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는 일들이 있어요. 근데 솔직히 당시에는 그런 걱정을 안 했습니다. 집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까 아이들 친구들도 많이 놀러왔었지요."
취재진에게 당시 육아노트를 보여주고 있는 가노 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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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미들은 육아노트에 아이들의 '식사시간, 먹은 음식, 아이들이 한 이야기, 자신의 육아 소감'을 기록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아이와 돌보미를 단 둘이 두지 않았습니다. '경험자가 붙어서 여럿이 함께' 돌보는 게 유일한 규칙이었다고 합니다. 돌봄의 기준은 높지 않았고, 돌보미들마다 아이와 관계 맺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그저 아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무방했습니다.
쓰치: "지원하는 쪽과 지원받는 쪽, 뭔가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러 간다는 게 아니라 서로 능동적으로, '내가 가고 싶어서' 모였다는 느낌이 들어서 (육아노트를 보며 당시) 아이 입장에서는 더 기뻤어요."
새롭게 쓰는 '가족(家族)'의 정의
쓰치가 인터뷰 도중 가장 환하게 웃었던 순간은 세 살 생일파티 때 70명의 어른들이 와줬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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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치의 나이 8살, 호코의 나이 29살에 공동양육은 끝났습니다. 보통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특별한 가족을 꾸렸던 이들 모자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쓰치: "역시 '가족이라는 말에 얽매이지 않아도 좋은 시대가 아닐까', '좀 더 다르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들은 가족입니까?'라고 질문을 받으면 좀 더 새로운 표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표현할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왠지 개인과의 관계, 얼굴이 떠오르네요. 그 집안의 분위기라든지, 어린이었던 제가 느끼는 풍경이라든지…한 사람 한 사람, 페페 씨의 얼굴, 다마고 씨의 얼굴 같은 것이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집합체(가족)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나 할까요(웃음)."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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