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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농업경쟁력의 기본, 종자와 디지털 육종[기고/권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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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권재한 농촌진흥청장


올여름 전례 없는 폭염을 겪으며 우리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그 여파로 농산물 가격마저 폭등해 장바구니 물가가 요동쳤다. 일상화된 기후 위기에 가장 취약한 산업이 농업이다. 국제사회는 기후 위기에 맞서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기술에 기반한 해법으로 ‘품종 개량’에 주목하고 있다.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종자는 농업 경쟁력의 기본이자 식량 자원을 넘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자원이다.

최근 들어 급격한 기후변화와 불안정한 국제정세가 불러온 식량 위기의 타개책으로 ‘디지털 육종’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육종은 경험에 의존하던 전통적 육종 방법에서 한 차원 진보해 유전정보와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기후변화 및 재배 환경에 적합한 품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기술이다.

바이엘, 신젠타 같은 글로벌 종자 기업들은 디지털 육종을 활용해 생산성과 병해충 저항성이 강화된 콩, 옥수수 품종을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더 나아가 혁신적인 종자 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역시 디지털 육종을 통한 신품종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분자마커를 이용한 생명공학 기법으로 기후변화와 병해충에 대응한 육종재료를 선발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과학기술 100선에 선정된 ‘세계 최초 밀 스피드브리딩’ 기술은 세대촉진 및 분자마커로 품종 육성 기간을 13년에서 7년으로 단축해 육종 효율을 증진했다. 대한민국 디지털 육종의 대표적 성과로 의의가 크다. 식물 분야 세계 3대 학술지인 몰레큘러 플랜트(Molecular Plant)에 게재돼 전 세계적으로 학술성과도 인정받았다.

연구의 성공에는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핵심 인프라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지난해 도입한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빅데이터를 분석해 육종에 활용하고 있다. 올해는 민간 종자기업에 표현체 영상분석 기술을 전수하고, 채소 분야 분자표지 기술의 육종 활용 사례도 공유하고 있다. 디지털 육종에 필요한 인프라와 개발된 기술을 개방해 민간의 육종 역량을 높여 가자는 취지다.

10월 18일 국내 육종 전문가들이 모여 육종 기술 발전 전략을 논의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글로벌 종자회사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한 육종 전문가는 현재 기후 위기 속에서 디지털 육종은 선택이 아닌 필수 기술이라고 단언했다. 정부와 민간이 벼, 딸기, 한우 등 선도 모델을 중심으로 육종 단계별 데이터를 생성하고 성공사례를 만드는 협업적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투자분석회사 S&P글로벌에 따르면 세계 종자 시장은 2022년에 68조 원 규모를 넘어섰다. 그 자체가 메가마켓으로 2030년에는 200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 종자 시장은 여전히 세계 시장의 1.2%에 불과하다. 농촌진흥청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민관이 공동의 목표를 세워 기후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도구로 디지털 육종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단초는 바로 ‘디지털 육종’에서 찾을 수 있다.

권재한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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