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일자리 ‘미스매치’ 심화
과학기술 전공자 절반
관련없는 데서 근무해
박사학위 취득 수년 소요에도
인재 양성 시스템 정착 안 돼
양자∙AI 인력난 점차 심화
AI 기업 80% “인력 부족”
과학기술 전공자 절반
관련없는 데서 근무해
박사학위 취득 수년 소요에도
인재 양성 시스템 정착 안 돼
양자∙AI 인력난 점차 심화
AI 기업 80% “인력 부족”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사진 = 픽사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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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국내 모 대학에서 바이오 관련 박사 학위를 받은 A씨는 최근 겨우 한 중소기업에 일자리를 구했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1년간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하던 연구실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계약이 종료됐고, 울며 겨자먹기로 기계설비 쪽 기업연구소에 취직했다. A씨는 “바이오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교수직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면서 “그래도 나는 아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다른 박사들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이공계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이같은 ‘미스매치’ 탓도 있다고 과학기술계는 말한다.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데, 장기적 안목으로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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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2월 발표한 ‘과학기술 전공자 취업 현황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과학기술 전공자의 46.7%가 비과학기술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 전공자 2명 중 1명이 전공과 상관 없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이공계 박사가 특정 분야에 치우쳐 양성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심의회의 미래인재특별위원회에 보고된 ‘이공계박사추적조사 주요결과’에 따르면 2022년 9247명이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중 35%가 바이오 관련 박사였다.
지난 2023년 1월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3 하반기 정보보호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박사학위까지 받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은 ‘양질의 박사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공계 박사 배출 대비 박사급 연구개발인력 일자리 증가는 1990년대에는 약 2.6배였다. 2000년대 이후 박사인력 배출은 약 5배 가까이 늘었으나 일자리 증가는 큰 변화가 없었다. 2016~2020년 사이 박사 배출 대비 일자리 증가는 약 54% 수준에 불과하다.
바이오 분야는 이런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 분야다. 국내 산업계가 취약하다며 정부의 관련 투자가 대학에 집중되면서, 바이오 분야 석박사 졸업자는 크게 늘었다. 문제는 생태계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탓에 기업들의 연구인력의 수요가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박사 미취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바이오 분야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나노 분야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들어 정부가 투자를 늘리면서 관련 학과도 잇달아 개설됐다. 2004~2012년 동안 대학의 나노 분야 연구개발비는 연평균 10.4% 증가했고, 2009~2013년 동안 석박사 과정 학생수는 연평균 9.4% 증가했다. 그러나 졸업생 중 나노 관련 회사에 취업한 인력은 16.3%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세번째)가 지난 9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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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박사들이 갈 곳이 없다지만, 기업들은 기업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업 영역을 확장하거나 새로 창업을 하려고 해도 인재가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가령 최근 양자 붐이 일면서 양자를 기반으로 한 창업이 늘고 있다. 이들 창업자들이 가장 고충을 겪는 것은 인재 영입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사람이 없어 채용을 접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나 대학들에 수소문하며 양자 인재를 찾고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유수의 대기업들이 양자 사업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인재 블랙홀’인 인공지능(AI) 분야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 8월 발표한 ‘4개 주요 신기술 분야 향후 5년간(2023~2027년) 신규 인력수급 전망 결과’에 따르면 AI 분야 인력은 1만28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의료와 금융, 제조,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는 추세인 데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재 확보전쟁을 벌이고 있어 고급인력의 해외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올 4월 발표한 ‘2023년 AI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AI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2354곳 중 81.9%가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미스매치와 이공계 인재 부족 문제를 타개하려면 대학원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예산을 투입해 양성한 이공계 외국인 석박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도 시스템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외국계 고급인력의 국내 정착률은 약 30%에 불과하다.
박기범 STEPI 선임연구위원은 “자율성을 강조한 대학원 정책도 이제는 구조개혁과 국가 전체 R&D의 효율화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며 “강도 높은 대학 구조개혁과 대학원 특성화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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