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Thus Spake Zarathustra)에서 '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고 결정한다'라고 믿는 인류의 오랜 세계관을 부정했다. 대신 인간이 주체적으로 창조하는 삶을 강조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자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Zoroaster)를 독일어식으로 발음한 이름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인류 최초로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정의하고, 사후 세계도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세계로 제시했다.
그런데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과 신의 절대성을 부정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니체는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스스로 의지와 능력으로 삶을 극복하고 창조하는 '위버맨쉬'(Ubebermensch, overman, 초인)의 존재임을 강조한다.
주인공인 자라투스트라가 10년간의 은둔을 끝내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대지에 충실하라!", 즉 "현재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책의 초반부에 자라투스트라는 선과 악의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며, 대지 곧 현상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실체이며 진실이라고 고백한다.
◇ 불완전하기에 지속해 창조 가능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은 선을 추구해야 하며, 이것이 곧 신의 선택을 받아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 가치관은 기독교 사상에도 영향을 주며 오랫동안 서양의 도덕 관습과 가치 체계를 지배했다.
사람들은 사회와 국가의 도덕적 기준에 맞는 선과 악의 행위를 구분했고, 선을 더 많이 행함으로써 마침내 천국에 이른다고 믿었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천국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진리의 세계라고 말한다. 현실, 즉 현재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지나가고 스치는 하나의 현상이자 불완전한 세상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선을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진리의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거나 경험을 할 수는 없는 세상이고, 현실 세계는 실제로 느끼고 경험할 수는 있지만 불완전하고 착취가 일어나는 악이 가득한 세상이며 결국에는 지나가는 일시적인 세상이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또한 가상성의 스토리로 집단의식을 형성해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려는 치밀한 장치였다. 사람들에게 선한 행위를 장려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그 바탕에는 인간의 실질적인 삶이 구현되는 대지, 즉 '현실 세계는 고통이 가득한 허구의 세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들은 당장 현실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겹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선의 가치를 따른다면 천국에 이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현실은 불완전한 세상이며, 현실에서의 삶은 결국 천국으로 가기 위해 잠시 스치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렇게 인류가 절대적으로 믿어온 거대한 믿음 체계를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이 책에서 니체는 오히려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지의 세계가 진짜이며, 천상의 세상은 가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의 세상에서 불안정한 개인으로서 위버맨쉬의 의지를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창조를 이끌 주체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강조한다. 즉, 인간이 자기의 세계를 실현하는 것은 자신이 믿는 천상 세계를 만들 기본 권리가 신에게서 인간으로 돌아왔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는 불완전해 보이지만 꾸준히 변화하고 생성하는 특징 때문에 인간에게 그들이 중심이 되는 천상 세계를 구현하라는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기독교 사상에서 말하는 영원불멸의 천상 세계는 생성의 세상이 아닌 불멸의 세상이고 불변의 진실적 가치를 가진 세상이다. 이미 모든 것이 생성돼있고 영원불멸인 천상 세계는 완벽한 세상이므로 새로운 것이 탄생할 가능성이 없다.
반대로 현실 세계는 새로운 변화와 창조가 끊임없이 일어나기에 생성의 세계이며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이 있는 세계다.
현실 세계에서 지속적인 생성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인간의 가상성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니체는 인간이 이러한 가상성을 창조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현실 세계에서 초인적 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계속 생성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 메타버스를 통해 위버맨쉬 추구
미래 메타버스 세상에서 니체의 철학은 매우 의미가 있다. 우선 니체는 천상이라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닌, 현재의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통해 삶을 더 멋지게 디자인하고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체가 주장하는 창조의 세계는 서구 기독교 문명 세계에서 줄곧 주장해온 '선을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진실의 세상', '천국과 같은 천상의 세계'가 아니라 대지의 세상, 곧 현실의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이상과도 일치한다. 메타버스는 단순히 허구의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과 연계된 디지털 가상 세계이기에 우리는 이를 활용해 현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척하며 자기 가치를 창조해나갈 수 있다.
니체의 철학은 메타버스가 구현할 다양한 활동들의 철학과도 연결될 수 있다.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말을 통해 새로운 사후 세계를 제시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며, 인간은 죽음과 동시에 이전의 삶과 완전히 똑같은 삶으로 계속 회귀한다는 전제를 던진다.
이전의 삶이 힘겹고 고통스럽고 후회로 가득하다면 다시 태어나는 삶도 똑같은 모습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다시 태어나는 삶에서 반복적인 후회와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위버맨쉬가 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창조하면서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의 주장은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단순한 유희나 일탈이 아닌 인간의 삶을 더욱 발전시키고,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구현돼야 함을 의미한다.
메타버스가 현실에서 불가능하고 이상적인 세계만 구현한다면, 천상 세계를 동경하며 현실 세계를 인내하거나 부정하던 과거의 세계관과 다를 바 없다.
당장 눈앞에 주어진 삶에 충실하여지려면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삶과 분리돼선 안 된다.
"너 자신에게서 경멸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 자기 자신을 경멸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초인이 될 수 없다."
니체의 말이다. 미래 메타버스를 삶의 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할 우리는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인류의 새로운 기회인 메타버스를 통해 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창조하려면 나의 부족함이 무엇이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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