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쿨라임. 칠색비니 |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경구는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
저는 그 이유가 다음 속담과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용의 꼬리가 될 바엔, 뱀의 머리가 되어라”는 말을 저는 수없이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은 도전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우리 문화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일 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뱀의 머리라도 되면 ‘먹고는 산다’는 식의 가르침이 더 피부에 와닿긴 합니다.
루빼를 통해 패키징에 사용할 칩을 검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반도체에 대해 얘기한다고 해 놓고 사설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종종 산업계에선 이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머리까지 바꾸는 일은 벌어집니다.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해야 할까요.
결국 업계의 1등은 머리부터 몸통 꼬리까지 유기적이어야 변화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시프트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상정해야 합니다.
반도체에서 그 사례를 적응해보면 후공정이라고 불리는 패키징 공정이 이른바 미세화 기술 만큼 중요해진 최근 몇년 사이의 흐름이 바로 그 사례라고 보입니다.
결국 삼성전자의 실기가 TSMC와 비교해서도 이 패키징 공정의 중요성을 얕봤기 때문이며, SK하이닉스의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성공 역시 패키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꼬리는 몸과 하나라 꼬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첨단의 기술이 맘껏 ‘유영’하지 못하고 느려지면서 ‘초격차’는 따라잡히고 앞서 가는 경쟁자는 따라 잡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떠오르는 반도체 후공정이 바로 이 패키징에 쓰이는 기판의 재료에서부터 꿈틀되며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국내 회사가 미국에 세운 공장에 미국이 보조금을 줬다는 소식이 매일경제신문을 통해 단독 보도되며 그야말로 멀리 내다봤던 기술이 눈 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만약 늦게 발견한다면, 영화 타이타닉의 침몰 장면처럼 빙산이 다가온다고 선원이 발견했을 때 이미 수면 아래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배가 곧 뒤집힐지도 모릅니다. 물론 빨리 알아챈다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 만큼 IT의 흐름은 가파르고 잠시 “졸면 죽는다”는 말이 들어 맞는 치열한 업계입니다.
그렇다면 글래스 기판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기술은 늘 한계에 부딪히고 장비를 바꾸거나 공법을 개선하는 한계에 부딪히면 결국에는 소재를 바꿔 보려는 노력이 수반됩니다.
유리 기판이 플라스틱 보다 좋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유리 기판이 더 평평하고 휘는 정도가 약하기 때문에 대형화 되는 기판의 성질에 더 잘 맞습니다. 특히 전기 신호가 지나가는 통로를 유리소재로 만드는데 이를 글래스코어 기판이라고 부릅니다.
기판에 실장되는 반도체가 많아지면서 기판의 크기 자체가 커지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판이 휘는 문제를 개선하면서 신호 손실도 최소화하는 게 유리기판의 특징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리의 특성을 되새겨 봅시다. 우선 절연성은 플라스틱 보다 좋습니다. 플라스틱 보다 덜 휘어지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아는 특징일테고 강도가 높으면서도 얇게 가공하게 되면 강도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리 기술은 주로 반도체 보단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주목 받아왔습니다. 한 때 디스플레이가 국내 산업을 이끌 때 삼성이 코닝과 합자회사를 만들었습니다. LG는 독일 쇼트 등에서 유리를 공급받았고 일본전기초자(NEG)도 유리 가공에 일가견이 있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파주전기초자라고 하는 LG디스플레이와 공동 설립한 회사를 만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유리 기술만으론 부족합니다. 이를 가공하는 얇게 가공하는 기술이 바로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이른바 폴더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기술로 발전됐고 국내 몇몇 중소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섰습니다.
글래스 기판의 미래를 발표한 것은 매년 개발자회의(IDF)를 개최하는 인텔입니다. 인텔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인텔이 직접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공정을 다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즉 어떤 기술은 구매로 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와중에 들린 소식이 바로 미국 상무부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반도체지원법상 국가 첨단 패키징 제조 프로그램(NAPMP)의 첨단 기판 분야 R&D 보조금 대상자로 앱솔릭스 컨소시엄을 선정한 것입니다.
앱솔릭스가 이끄는 이 컨소시엄에는 빅테크를 비롯해 학계, 비영리 단체 등 30여개 파트너가 포함됐으며, 글라스 기판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앱솔릭스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중 처음으로 반도체법에 따른 생산 보조금 7500만달러를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R&D 보조금도 받게 되며 유리 기판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날 이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증권 시장도 크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한편. 올해초 CES에서 삼성전기도 글라스기판 사업을 공식화 했습니다. 결과물은 SK가 먼저 내놨지만, 결국 제조기술은 상용화와 수율이 문제입니다. 글래스 기판이 다시 ‘꼬리가 몸통 흔들고 머리를 바꾸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입니다.
TSV 기술 . 삼성뉴스룸 |
이제야 T.G.V에 대해 얘기할 차례입니다. 유리기판에선 이 약자는 프랑스의 고속열차가 아닌 ‘TGV(Through Glass Via, 유리 관통 전극)을 의미합니다.
아시다시피 기판에 구멍을 뚫는 기술은 전기가 지나다니는 반도체에서 가장 핵심 기술입니다. 현재는 TSV (Through Silicon Via)즉 실리콘에 구멍을 뚫고 전기를 흐르게 하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이 기술이 HBM에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유리기판 사이에 전기가 흐를 수 있도록 뚫고 도금하는 기술이 향후 글래스 기판 시장에서 주목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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