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뇌 셰인 오마라 지음, 안진이 옮김 어크로스 펴냄, 2만원 |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억 장애 환자인 헨리 몰레이슨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몰레이슨은 6세나 7세였을 때 자전거 사고를 당했는데 열 살 되던 해 뇌전증 발작이 시작되었다. 소년은 자라 27세가 되었을 때 뇌의 좌우에서 해마를 제거하는 '실험적' 수술을 받았다. 그의 뇌전증 발작은 즉시 좋아졌고 인지 기능 전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능력은 정상으로 보였으나 일상에서 새로 접한 어떤 것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사회·문화·정치 생활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없었고, 늘 간병인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기억이 없다면 어떤 문화도 생겨날 수 없고 사회는 사라진다. 기억이 사회적 소통의 재료가 되어준다. 대화를 통해 기억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된다. 그 전이는 사회문화적 관행의 기초를 형성해 우리를 더 큰 사회집단으로 묶어주고 있는 국가라는 상상 속의 공동체에 헌신하게 한다.
인류를 '대화하는 종'으로 정의하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 셰인 오마라는 아일랜드 뇌과학자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트리니티대 신경과학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이자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심리학부에서 뇌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모든 국가가 처음에는 대화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어떤 자원이 있는지, 무엇을 지킬 수 있는지 상상하며 대화를 나눴다.
대중매체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대화를 통해 국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다. 우리 영토가 어디서 끝나고 너희 영토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합의되어야 한다. 위대한 정치인은 상상의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생각, 행동, 감정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이야기 또는 서사를 국민 다수가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야 한다.
한편 국민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결론을 신뢰한다. 대개 그것이 상당히 괜찮은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쉽게 믿는 것도 그래서다. 개개인의 지식은 불안정하다. 지식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지식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자신의 위태로운 기억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 시스템을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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