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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프롬이 곧 블라디미르 푸틴 그 자체다. 가스프롬은 세계 최대 에너지 그룹일 뿐만 아니라 푸틴이 벌인 전쟁의 이름이다. 2022년 9월 발트해 해저의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이 폭파되기 전까지 푸틴이 손에 쥔 도구는 노르트스트림이었다. 노르트스트림1·2는 세계 최대 해저 가스관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적대적인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독일까지 직접 운반하는 4개의 거대한 파이프라인이었다. 최근에 설치돼 가장 많은 논란을 부르며 가장 큰 관심을 끈 가스관이기도 하다.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어떻게 '노르트스트림 덫'을 놓아서 유럽을 장악하려 했는지에 관한 책이 출간됐다. 저자 마리옹 반 렌테르겜은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대기자이자 칼럼니스트로 '르몽드' '가디언' 등에서 일했다. 이 책은 기자가 쓴 책답게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쉽게 쓰였다. 짧고 강한 문장에서 힘이 느껴진다.
가스프롬은 러시아 최대 기업이자 천연가스 산업의 선두 주자로 천연가스 생산과 수출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데다 탐사부터 채굴, 처리, 운송, 저장,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 전반을 관리한다. 2020년 가스프롬그룹이 올린 전체 매출은 800억달러를 넘었다. 가스프롬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세계 매장량의 16%를 관리한다. 또한 전 세계에 연결된 가스관이 수만 ㎞에 달하고, 최대 고객은 유럽연합(EU)이다.
노르트스트림의 덫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롤러코스터 펴냄 1만8700원 |
푸틴은 유럽에 20여 년 전부터 노르트스트림 덫을 놓았다. 푸틴이 세운 전략은 수입국들의 목줄을 부여잡고 에너지 의존성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국가라면 가스관을 닫아버리거나 가격을 올렸다.
특히 푸틴이 노르트스트림이라는 브랜드에 국제적 위상을 심어주려고 고용한 일등 항해사는 독일 전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였다. 그는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냈다. 처음에 슈뢰더는 푸틴을 만나주지 않고 무시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1년 9월 푸틴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 초대돼 예우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전직 KGB 요원 푸틴은 타깃의 허점을 파악하고 욕망, 결핍, 약점을 파고들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슈뢰더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본보기였고 오랫동안 부족했던 돈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 문제도 약점이었다. 독일어를 할 줄 알았던 푸틴은 슈뢰더와 공통분모를 찾으며 매력 공세를 퍼부었다. 이후 2005년 12월 슈뢰더는 앙겔라 메르켈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정확히 한 달 뒤 노르트스트림AG 이사회에 앉았다.
가스프롬은 푸틴이 처음 대통령이 됐던 2000년부터 늘 함께했다. 푸틴은 크렘린궁에 입성한 후 곧장 가스프롬 최고경영자를 경질하고 그 자리에 우직한 충성파인 공산당 중진 알렉세이 밀레르를 앉혔다.
밀레르는 최고경영자에 임명되고 2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세계 천연가스 산업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꼽힌다. 물론 그는 고위직에 앉은 푸틴 측근들이 모두 그랬듯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바지사장일 뿐, 가스프롬 실제 주인은 푸틴이다.
푸틴이 가스프롬으로 번 돈은 군자금이 됐다. 그의 가장 전략적인 자금줄은 석유와 천연가스다. 천연가스는 석유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열쇠다. 왜냐하면 유럽이 석유 공급원을 다변화했지만 천연가스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석유는 운송 시설이 다양해서 특정한 공급처에 의존할 필요성이 낮지만 천연가스의 가스관은 러시아 수출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는 선박으로 운송하기 때문에 비싸다. 즉 편리함, 가격 경쟁력,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많은 유럽인에게 천연가스는 무시할 수 없는 자원이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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