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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금지된 걸 똑똑히 드러내는 게 작가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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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30년대, 15세 프랑스 소녀가 '식민지 베트남'에 도착한다. 가난한 부모를 따라나선 불가피한 이민 길이었다. 메콩강 배 위에서 소녀는 대자본가인 중국인 남성을 만난다. 남자는 약혼한 몸이었지만 둘은 연인이 된다. 27세 남성과 15세 소녀의 열애. 둘의 감정은 정사로 이어진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장편소설 '연인'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유럽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 1984년 수상작으로 '장미의 이름' '티벳에서의 7년'을 연출한 장 자크 아노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논란을 몰고 다녔다. 어른과 동침하는 소녀 나이가 10대란 설정도 믿기 어려웠지만 소녀의 삶이 이 책을 쓴 작가 뒤라스의 실제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2021년 한국에 출간된 인터뷰집 '뒤라스의 말'은 뒤라스의 목소리를 꿰맨 책이다. 이 책 속 뒤라스의 언어는 측정이 불가능할 만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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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뒤라스는 '문학 앞에서 발가벗은 인간'을 말한다.

뒤라스에 따르면, 작가란 누구나 자기 자신에 관해 쓰는 존재다. 자신과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를 쓸 때도, 그 이야기는 작가 생애의 핵심 사건과 연관된다. 뒤라스가 '연인'을 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설 '연인'이 한 남자의 정부(情婦)가 된 10대 소녀의 목소리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연인'을 유해한 소설로 볼 수도 없다. 나체의 정사가 빈번하게 그려지더라도 소설은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독자는 쉽게 알 수 있다. '부유하지만 계급적으로 멸시받는 하층민인 중국인 남성'과 '궁핍하지만 계급적으로 지배계층인 프랑스인 소녀'란 모순적 설정도 '연인'의 성취다. 뒤라스는 쓴다.

"금지된 것을 똑똑히 드러내는 게 작가의 임무다. 작가는 그 자체로 위험한 사람이어야 한다. 삶을 돌보지 않는 누군가여야 한다."

소설 말미엔 소녀의 후일담이 나온다. 중국인 남성은 약혼 때문에 소녀를 떠났고, 수십 년 후 소녀는 유럽 최정상 작가가 돼 있다. 옛 소녀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그 남자였다.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란 말과 함께.

뒤라스는 '연인'에서 말하고 싶었던 바를 이렇게 털어놓는다.

"내 책은 늘 '제시된 다음 결여되는 것'을 중심으로 탄생하고 전개된다. 이 소설은 모든 '중단된 것'에 관한 이야기다."

이별이란 마땅히 지속됐어야 하는 모든 것들의 중단과 결여다. '연인'은 그걸 간파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도약한다.

성(性)을 소재로 삼은 모든 소설은 '외설이냐, 아니냐'의 논쟁으로 번졌다. 포르노그래피와 걸작은 겉으론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둘은 지구와 달 사이 거리만큼 멀다. '너머'를 바라보게 하는 힘. 그게 포르노그래피와 걸작의 결정적 차이다.

'채식주의자'의 외설성 논란 소식을 들으며 뒤라스를 펼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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