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놓쳤다. 회사 야간 당직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있어 늦진 않았다. 다만 집에 일찍 들어가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다, 오늘 당직을 깜빡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어쩔 수 없다며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회사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회사에 가는 게 좋은 건 입사할 때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조금은 해방된 느낌도 들었다. 본래 나는 집에 일찍 들어가서 아기를 안고 있어야 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육아 동지의 부재에 서운함을 표했다.
독박육아라는 단어가 이해가 된다. 육아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새벽에도 수유하기 위해 몇 번은 깨야 한다. 수유를 준비하고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는 시간을 고려하면 중간중간 눈을 붙여도 선잠을 잘 수밖에 없다.
일과 육아의 가장 큰 차이는 고용주에 있다. 회사 일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고용주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하고 식사시간도 보장해준다. 그러나 육아의 고용주인 아들은 내 상황 같은 건 조금도 고려해주지 않는다. 잘 자는 것 같던 녀석은 저녁을 차려놓고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으면 우는 게 특기다. 그 덕분에 찬밥을 먹는 일이 매우 빈번하다.
나는 양가가 모두 서울에서 멀다. 둘이서만 육아를 하기에 내가 조금 덜 하는 날이 있다면 그대로 아내에게 전가된다. 퇴근 후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와이프의 피로도는 급격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번주가 특히 그랬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내가 일찍 퇴근하고 아이를 돌봤다. 아내를 조금 더 일찍 잠들게 했다. 아이는 그날따라 새벽 시간에 더 보챘다. 평소보다 긴 시간을 녀석과 씨름했다.
잠을 못 자니 너무 힘들었다. 회사에서 일도 많았던 때라 정신적으로도 피로했다. 길을 걷다가 정말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행히 아내는 금방 회복했고 다음날은 내가 조금 더 잤다.
육아는 지름길이 없는 느낌이다.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휴대폰을 보면 짜증을 낸다. 육아는 시대가 달라져도 결국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크다. 직접 안고 눈을 맞춰야 한다. 부모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고전적인 일이다.
그래도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이들은 금방 커버린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만 해도 아내와 둘째에 대한 얘기를 종종 했다. 나는 하나만 키우자고 했지만 아내는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다. 둘을 키워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힘든 것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둘째에게 쏟을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이젠 아기가 생기면 정부에서 많은 도움을 준다. 금전적으로나 사회 서비스적 측면에서나 정말 아기를 키우기 좋아졌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게 풀린다.
[최근도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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