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요, 호외!"
1960~1970년대만 해도 큰 사건, 사고가 터지면 신문 배달 소년들이 호외를 뿌리며 외치는 소리가 광화문 네거리에 울려 퍼지곤 했다.
달포 전에 소설가 한강 씨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온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의 수상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날 한강 씨가 졸업한 연세대의 학보 '연세춘추'는 10월 11일 호외를 발행했다. 일간지도 아닌 대학의 학보사에서 호외를 발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국내 일간지도 아닌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이 소식을 역시 호외로 발행했다는 사실이다.
호외(號外)란 일간지가 당일자 발행 이후 대형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 다음 호 발행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정규 호(號) 외(外)에 임시로 급히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방송으로 치면 비정규 시간대에 임시로 편성하는 긴급 방송에 해당한다.
호외란 말은 일본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일본 최초의 호외는 1876년에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호외는 그보다 18년 늦은 1894년에 처음 발행되었다. 당시 개항지 인천에서 일본인이 발행하던 조선신보는 그해 7월 23일 일본군의 경복궁 급습 사건을 '호외'로 발행했다.
호외가 일간신문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부의 관보, 정당의 당보, 대학의 학보, 사회단체의 기관지 등에서도 호외를 발행했다. 이번에 한강 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호외로 전한 연세춘추는 2007년에도 학교 측의 편집권 탄압에 맞서 제호도 없앤 채 호외를 발행했다.
TV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신문 호외는 존재 가치가 컸다. 당시로선 호외가 유일한 속보 매체여서 신문사 간에 호외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신문은 하루에 여섯 차례나 전황 호외를 발행했다.
속보 경쟁을 벌이다 보니 오보도 있었다. 구한말 항일지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7월 18일 '헤이그밀사사건' 관련 호외에서 이준 열사가 할복·자결했다고 전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또 1986년 11월 17일 몇몇 신문은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다고 호외로 전했는데, 김일성은 8년 뒤인 1994년 7월 8일 사망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호외는 간간이 발행되었다. 월드컵 4강 신화(2002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2009년), 연평도 포격 사건(2010년), 박근혜 대통령 파면(2017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2018년) 등. 국내에서 호외 맥이 끊겼으나 일본에서는 줄기차게 발행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망(2022년), 장기 7관왕 탄생(2023년), 피폭 단체 노벨평화상 수상(2024년) 등.
호외를 뿌리던 소년들의 외침 소리는 이미 오래전에 끊어졌다. 대신 광화문 네거리에는 신문사에서 세운 대형 전광판이 종일 뉴스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정운현 한국문화정보원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