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푸드스캐너로 헬스케어 시장 개척하는 누비랩
현대차 자율주행기술 개발하다 창업… 95% 정확도로 음식 종류-양 분석
영양사의 육안 측정 방식 혁신
미국-싱가포르 등 글로벌 시장 진출
김대훈 대표이사가 AI 푸드 스캐너가 음식물의 종류와 양을 가늠해 섭취 영양 성분을 분석하는 과정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 설치된 기기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을 끼니마다 정확하게 측정하면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할까?’
누비랩은 이런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하던 연구원에 의해 2018년 설립됐다. 김대훈 누비랩 대표이사(39)는 현대자동차에서 자율주행 같은 선행기술을 8년간 연구했다. 자율주행 기술 중 비전 인식 기술을 활용하면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할 것을 알았다. 왜 하필 음식이었을까.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22일 만난 김 대표는 “먹은 음식을 매끼 자동으로 기록하면 섭취 영양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고, 개인별로 적정 섭취량을 추정할 수 있어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누비랩이 만든 인공지능(AI) 음식 측정기(AI 푸드 스캐너)는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에서 이미 사용 중이다. 싱가포르의 병원에서 환자식을 관리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 “연간 9억 t 글로벌 음식물 쓰레기 줄일 것”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은 열망이 컸던 그는 연구원 시절부터 창업에 대한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달리기를 얼마를 뛰었고 최대 심박수가 얼마였고, 소모된 칼로리가 얼마인지를 보여주는 등 헬스케어 분야에서 많은 것이 디지털화하는 중이다. 그런데 유독 음식 섭취량을 측정하는 분야는 전문가가 눈으로 가늠을 하거나 저울에 하나하나 측정해 일일이 기록하는 방식이었다”고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남아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에도 놀랐다. 그는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세계에서 연간 9억 t이 넘는 음식이 버려지고 있다.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환경 문제다. 특히 대형 레스토랑과 기업 급식소에서는 만들어진 음식의 약 25%가 폐기되고 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남겨져 버려지는 음식이다”고 했다. 김 대표는 “푸드 관련 산업이 디지털화되지 않은 가장 큰 시장이라는 점에 주목했고, 음식을 디지털화하면 산업 전체를 최적화할 수 있다”고 했다. 연간 9억 t에 넘는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 영양 섭취와 식습관 관리 탁월
누비랩의 AI 푸드 스캐너는 1초 만에 음식의 종류와 양을 95% 이상의 정확도로 분석한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쓰이는 3차원 센서와 이미지 인식 기술을 식단 분석에 접목한 덕분이다. 기존의 무게 측정 방식보다 훨씬 정확하고 편리하게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예컨대 식판 위의 음식을 메뉴별로 일일이 다 무게를 측정하기는 힘들지만, 푸드 스캐너는 거의 정확히 분석해서 실시간으로 알려 준다.
누비랩은 어린이집과 학교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려는 욕구가 강력해서 AI 푸드 스캐너에 대한 학부모와 기관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누비랩은 AI 푸드 스캐너에 올바른 식습관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결합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경우 부모들이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실제 사진을 앱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고, 그날 먹은 음식을 통해 섭취한 영양분까지 알 수 있다. 사용자들은 음식을 먹기 전과 먹은 후에 식판을 AI 푸드 스캐너에 올린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 종류와 분량을 빼고 섭취량이 기록된다. 음식을 다 먹은 아이에게는 푸드 스캐너가 영상과 음성으로 칭찬을 해 준다. 김 대표는 “이런 동기 부여 장치들을 통해 아이들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비율이 높아졌다”며 “집에서는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식판을 비우는 것을 본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고양오금초등학교 학생이 식판 스캔 후 본인의 잔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누비랩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푸드 스캐너로 수집된 데이터는 학생 개인별 영양 섭취와 식사 습관 자료로 교사들에게 제공된다. 또 급식을 운영하는 기업에는 잔반을 덜 남길 수 있는 식사량과 메뉴 선정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누비랩은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 학교 등 400여 곳에 푸드 스캐너를 공급했다. 학교는 전국에 1만1000여 개, 어린이집은 3만5000여 곳이니 개척할 곳이 많이 남은 셈이다. 김 대표는 “서울의 한 대기업 급식소에서는 시험 운영 기간 동안 음식물 쓰레기가 30∼40%가량 감소했다”며 “최적의 식재료를 사용해 원재료 비용은 15%가량 절감했다”고 전했다. 누비랩이 2022년 자사 푸드 스캐너를 사용 중인 200여 곳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음식물 쓰레기는 5000t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 싱가포르-미국 등 해외 진출
싱가포르 알렉산드라병원에서 누비랩 직원이 병원 관계자에게 푸드 스캐너를 이용해 환자 식사를 기록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누비랩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누비랩은 싱가포르 알렉산드라 병원에 환자식 관리 서비스를 1년 6개월째 제공하고 있다. 환자가 식사를 마치면 식판을 수거해 카트에 실어 옮긴다. 카트나 중앙 주방에서 AI 푸드 스캐너를 설치해 식판을 스캔해 섭취량을 자동으로 기록한다. 기존에는 간호사들이 환자의 식사량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록했다. 김 대표는 “10명이 기록하면 10명이 다 환자의 섭취량을 다르게 적을 정도여서, 수기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만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낮다”고 했다. 푸드 스캐너로 데이터의 질을 높이고 인력 낭비도 줄여주는 셈이다. 미국 병원에도 설치를 막 시작하는 단계이고, 캐나다 병원 진출도 준비 중이다. 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 급식 기업인 컴퍼스그룹과는 서비스 검증을 진행 중이다.
누비랩은 해외에서 여러 번 이름 있는 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구글 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 선정됐고, 미국 에디슨 어워즈 은상도 받았다. 세계경제포럼 ‘테크놀로지 파이어니어 2023’ 수성기업으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AI 식습관 코칭’으로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5 디지털헬스 부문 혁신상을 수상했다.
● 개인별 섭취 데이터의 힘
누비랩은 내년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환경부의 탄소중립포인트 제도에서 잔반 제로 항목이 포함돼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식사 전후 잔반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춘 급식 장소에서 식사를 한 개인이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포인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김 대표는 “구내식당을 갖춘 기업이 이런 활동에 동참하면 환경 보호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기에 푸드 스캐너의 도입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누비랩의 장기적인 꿈은 더 크다. 김 대표는 ‘개인별로 먹은 음식 섭취에 대한 데이터가 장기간 축적된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 중이다. 암은 물론이고 여러 만성질환이 어떻게 발생하고 퍼지는지 연구하는 것이 더 쉬워질 수 있다. 그는 “같은 밥을 먹어도 사람마다 혈당이 오르는 속도가 다른 등 반응이 다르다”며 “다르게 반응하는 개인별 차이를 고려한 정밀의료가 가능하려면 누비랩의 데이터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어린이 건강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섭취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식습관 패턴을 제공하는 것 등이 가능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어린이집, 학교뿐만 아니라 병원과 요양원 등 영양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며 “장기적으로는 개인별 식습관 데이터를 바탕으로 헬스케어 시장을 확대하는 누비랩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