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유병례, 윤현숙 지음/336쪽·1만8000원·뿌리와이파리
중국 전설에는 술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대 하나라의 군왕인 두강(杜康)의 꿈에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나타나 “맑은 샘물을 줄 테니 서로 다른 세 방울의 피를 구해 샘물에 부으면 천하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두강은 문인, 무사, 멍청이에게 피를 얻어 샘물에 부었고, 샘물은 끓어올라 향기가 진동했다. 마시면 정신이 아찔하고 황홀해지는 이것이 바로 술이었다. 무사의 피가 호탕하게 술을 들이켜게 하고, 멍청이의 피가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게 하지만, 문인의 피가 시를 짓게 만든다는 술.
술과 얽힌 한시에 관한 이야기를 두 여성 중문학자가 함께 썼다. 두 저자는 중국 허난성 낙양의 강가를 산책하던 어느 날, 점심에 마신 백주에 취해 이백과 두보의 시를 술잔처럼 주고받는다. 이때 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시인들의 작품을 우리의 시각으로 다시 써보자는 생각에 이르러 책이 탄생했다.
책은 도연명, 이백, 두보, 소식, 왕유, 백거이 등이 지은 술에 관한 시 100여 수를 통해 술과 인간의 관계를 짚어본다. “술 없으면 시 짓는 일 멈춰야 하고, 시 없으면 술 마시는 일 그만두어야 하리”(이규보), “저 강물 변해서 모두 술이 된다면 좋겠다”(이백), “신선이 될 때까지 (술을) 끊어 보리라”(도연명), “(친구와 작별하며) 술 한 잔 더 권하며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왕유)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기에 이색, 이인로, 이숭인, 노수신, 박은 등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는 물론 중국의 마원, 고굉중, 석도, 양해, 문징명과 조선 화가 김홍도, 윤두서의 그림 35점도 함께 수록됐다.
어린 시절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 호기심에 주전자 뚜껑에 몰래 조금 따라 마시며 술을 독학(?)했다거나, 중국 고전 시를 해석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말에 음주에 열성을 보였다가 뒤늦게 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발현하는 사람의 감성이 중요함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등 저자들의 솔직한 일화도 만날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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