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말은 권위로서든, 이동 수단으로서든 역사와 일상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부분 유럽 군주는 말에 올라 위엄을 한껏 드러내는 초상화를 그렸다. 그뿐 아니라, 말은 전쟁 그림이나 풍경화에서도 빠질 수 없는 동반이었다. 말은 서구 문화의 한 축이었다.
왼쪽부터 카를 5세, 찰스 1세, 펠리페 4세, 루이 14세, 나폴레옹 1세 기마상. |
20세기 초 한 화가에 의해 기이한 말이 탄생했다. 주로 '파란 말'을 그린 프란츠 마르크(1880~1916)다. 그는 왜 파란색 말에 집중했을까?
'파란 말' |
마르크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나, 그가 택한 전공은 독일 뮌헨 대학 철학부였다.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친 1900년, 마르크는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며 예술의 길로 들어섰다.
보수적인 화단에 회의적이던 그가 발견한 '새로운 미술'은 고흐와 고갱, 세잔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이었다. 거기에 당시 추상미술에 접근하던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의 만남은 마르크가 탐구하던 미술 세계에 농밀함을 더했다.
1911년 말, 마르크의 강렬한 특징이라고 언급한 '파랑'이 실현됐다. 칸딘스키와 마르크가 투합하고,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 알렉세이 야블렌스키(1864~1941) 등이 모여 '청기사파'를 결성한 것이다.
제1호 '청기사' 연감 (1912) |
청기사파는 독일에서 발흥한 표현주의를 대표하는데, 파란색 선호와 기사 문화 낭만이 결합한 화풍이었다. 왜 파랑과 기사였을까?
파란색은 산업혁명 후 발전한 물질 중심 세계를 뛰어넘는 초월의 색, 정신의 색이었으며, 중세 기사들은 그 정신을 머금은 상징적 존재로 대입했다.
더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일이 추상미술 과업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색을 통해 발현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여러 색 중 파랑을 이상으로 삼았다.
마르크는 칸딘스키처럼 완전 추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말을 비롯한 동물을 즐겨 그리며, 인류가 잃어버린 순수를 동물에게서 찾으려 애썼다. 말은 그에게 자유의 상징이었고, 실물이었다.
'파란 말-1' (1911) |
'꿈' (1912) |
청기사파 결성 직전 그린 '노란 소'(1911)와 '눈 속에 누워 있는 개'(1911)처럼, 모성과 풍요를 상징하는 소와 개에 여성적인 색으로 꼽히는 노랑을 적용해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하기도 했다. 마르크 그림을 보며 반한다면, 소재인 동물들이 가진 순수뿐 아니라 강력한 원색 조화에 동화되는 감성 덕이다.
'눈 위에 누운 개' (1911) |
피카소가 추구한 입체주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시점으로 본 형태 분석에 몰입하기도 했지만, 원색에 내재한 원시와 율동감을 잃지 않았다. '색채 입체주의'로 부를 만한 화풍으로 전진하며 동물과 자연에 대한 탐닉을 넓혀 나갔다.
'두 말, 빨강과 파랑' (1912) |
이런 그의 시도는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소집돼 수류탄에 맞아 전사했기 때문이다. 불과 서른여섯 나이였다.
불후로 평가받는 근대 작가 중 특이할 정도로 서른여섯이나 서른일곱 나이에 요절한 작가가 눈에 띈다. 마르크를 비롯해 툴루즈 로트레크, 빈센트 반 고흐,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이다.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 동물과의 교감은 쉽지 않다. 마르크가 그린 동물도 그렇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그가 그린 동물이 인간 및 자연과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파란 말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기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때로 파랗지 않은 말을 그린 건 마르크 역시 현실의 말과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붉은 말들' (1911) |
마르크가 그린 말들이 펄쩍 뛴다. 이 가을에, 그의 화폭에서, 우리 마음에서. 파란 말들이 파란 하늘로 향한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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