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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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종합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박애순(가명·77)씨는 완화치료를 받으며 삶의 마지막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에게 질병의 고통이 처음 찾아온 것은 50대 중반인 2001년의 일이었다. 의사는 위암 1기라고 했지만 수술을 받고 보니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된 상태였다. 청소년 상담교사 등으로 일해온 애순씨는 대가족의 며느리로 고된 집안일까지 떠맡으며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다. 항암·방사선 치료로 1년을 보낸 뒤 5년을 채우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아픈 기간 동안, 일상이 무너지는 일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는 그는 2014년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이번엔 갑상선암이었다. 부모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줄로만 알아서 가족력이 있는지도 몰랐다. 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근근이 치료를 마쳤지만 2018년 그는 다시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복수가 차오르고 체력이 떨어져 병원을 찾았을 때다. 몇달 전 애순씨는 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지속하기엔 힘에 부쳤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치료만 받는 이유다. 애순씨는 몸속에 배액관을 꽂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그에게 지난 20년은 유병기간 그 자체였다. 노후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조차 세울 겨를도 없이, 어느새 그는 삶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과거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많던 시절엔 몇살까지 사느냐가 최대 관심이었다. 하지만 주된 사망 원인이 만성질환으로 옮겨진 뒤엔 어떤 노후를 맞을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며 ‘아픈 노후’를 보내야 하는 ‘유병장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 탓이다. 실제로 60대 이상 고령자의 주된 사망 원인은 암과 심장·뇌혈관·간 질환, 당뇨병 등이다. 애순씨의 투병 생활이 보여준 것처럼, 암도 이제 만성질환이 된 시대다. 암 환자의 진단 뒤 5년 생존율(72.1%·2017~2021년)이 높아진 영향이다.
이렇듯 ‘건강한 노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대수명 못지않게 주목받는 것이 건강수명이다. 2022년 출생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살이지만, 건강수명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65.8살이다. 16.9년은 골골거리며 병원을 들락거리는 신세로 지내야 한다는 의미다. 유병장수는 급속한 노인 의료비 증가를 넘어 노년기 삶의 질 저하라는 측면에서 방치할 수 없는 초고령사회의 숙제다.
기대수명 못 따라잡는 건강수명
기대수명이 수십년간 매해 0.2~0.4살씩 길어진 데 비해 건강수명은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우선, 기대수명은 주로 사회·경제적 생활수준과 건강 위험 요인, 의료 접근성 등에 영향을 받는다. 1970년만 해도 62.3살에 그쳤던 우리의 기대수명도 이런 요인에 힘입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1987년(70.1살)과 2009년(80.0살)에 각각 앞자리 숫자를 갈아치웠다. 그 정점은 2021년(83.6살)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비교에서도 최상위권이다. 일본과 스위스에 이어 세번째(2021년 기준)로 높다. 지난 20년간 한국 남성과 여성 노인의 기대여명은 각각 3.9년·4.2년 늘었지만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은 2.0년과 1.8년에 그친다.
이듬해인 2022년, 기대수명은 통계청 생명표가 작성된 지 52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 2017~18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라는 게 통계청 설명이었다. 앞서 2018년에도 기대수명이 사상 처음으로 전년 수준에서 멈춘 바 있다. 당시엔 기록적 한파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기대수명의 증가 속도를 조절하는 변수가 많아졌지만 증가세가 꺾였다고 보기엔 이르다.
내년부터 한국 사회는 65살 이상 노인 비중이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지난 7월1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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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따른 기대수명 차이(남 79.9살, 여 85.6살)가 유독 크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사회적으로 남녀가 평등할수록 수명의 차이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이지만, 가부장제와 성역할 고정관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추정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그 차이가 3살 정도다.
건강수명은 어떻게 측정할까. 통계청은 지난 2주간 질병이나 사고로 아팠던 적이 있는지, 며칠이나 아팠는지 등을 물어 유병률과 유병기간을 산출한다. 기대수명에서 이런 유병기간을 뺀 것이 건강수명이다. 2012년 이후 2년 주기로 나오는데, 큰 폭의 변동 없이 65살 안팎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보니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 격차가 2012년 15.2년에서 2022년 16.9년으로 더 벌어진 것이다.
2년 전 50대로 접어든 김영철(가명·52)씨는 앞으로 얼마나 건강한 상태로 살 수 있을까. 그는 동년배 남성의 평균치에 따라 81.6살까지 살 것으로 기대된다. 건강수명은 69.1살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더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영철씨는 체질량지수(BMI) 25를 넘어 비만 진단을 받았고 2년 전부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강하제를 복용한다. 공복 혈당도 높은 수준이어서 당뇨 직전 단계이고 주 2회 이상 술을 마시는 고위험 음주군(1회 평균 7잔 이상)에 속한다. 특별한 개선이 없다면 그는 나이가 들수록 만성질환으로 병원에 들락거릴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같은 나이대 여성의 사정은 좀 더 열악하다. 기대수명은 86.8살인데 건강수명은 70.1살에 불과하다. 남성보다 훨씬 더 오래 살지만 건강수명은 엇비슷한 것이다. 2022년 기준 50살 남녀의 남은 생애 중 건강한 기간은 남성 60.6%, 여성 54.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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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수명 측정을 둘러싼 백가쟁명
다만 보건의료계는 건강수명에 대한 지나친 걱정을 경계한다. 다양한 측정 방식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통계청 사회조사는 응답자 답변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증의 만성질환만으로도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건강검진을 통해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처방과 관리를 받는 이들이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노인의 86.1%는 만성질환을 달고 산다. 3개 이상 진단을 받은 이들도 35.9%에 이른다.(2023년 노인실태조사).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건강한 기간의 비중이 더 낮은 이유가 설명되기도 한다. “많은 연구에서 건강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의료인에게 증상과 징후를 전달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의료기관 방문을 질병의 마지막 단계까지 미루는 모습을 보인다”(통계개발원)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계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비교에 사용하는 건강수명을 좀 더 신뢰한다. 질병이나 장애로 건강을 잃은 기간을 제외하는 방식인데, 특정 건강상태 및 질병의 중증도를 따져 가중치를 정한다. 완전한 건강상태(0)와 죽음과 같은 상태(1)의 사이에서 값을 매긴다. 조민우 울산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암에 걸린 사람과 감기에 걸린 사람의 중증도가 다르기 때문에 유병기간에 가중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산식에 따르면 건강수명은 2019년 기준 73.1살로 올라간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계획에 활용하기 위해 별도로 국내 연구진이 한국인의 특성에 맞게 산출한 건강수명 지표를 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좀 더 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따르더라도, 건강수명은 2008년 68.9살에서 2021년 70.5살로 소폭만 올랐다. 2030년까지 73.3살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스스로 매긴 건강점수는요? OECD 최하위권
우리가 유독 주관적 건강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은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하면서 ‘주관적 건강인지율’을 측정한다.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음’ 혹은 ‘매우 좋음’이라고 응답한 이들의 비중이다. 2009년만 해도 40%대를 유지하던 이 비중이 2022년엔 36.2%로 뚝 떨어졌다. 65살 이상 노인의 주관적 건강인지율도 27.7%(2022년)에 그친다. 이 때문에 정부도 이 지표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전긍긍한다. 삶의 질 측정에서 주관적 지표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이시디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한 뒤로, 2021년 비교부턴 좀 더 후한 평가가 나온 통계청 지표로 제출 자료를 바꾸기도 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인의 ‘건강소외’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건강은 본인의 예방 노력과 이를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 의료서비스의 접근성 등으로 형성되는데, 우리는 의료에 대한 의존도만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감기에 걸리면 다른 주요국에선 ‘아프면 쉰다’는 취지에 따라 상병휴가를 내고 자신의 건강을 돌본다. 반면 우리는 ‘아파도 출근’을 한 뒤 병원에 가서 약 처방을 받는 식이다. 긴 노동과 짧은 수면, 심각한 노인빈곤, 높은 자살률 등의 사회구조는 개개인이 건강을 스스로 챙길 수 없게 만든다.
조병희 교수는 “기대수명이 높은 국가는 주관적 건강수준이 양호하며 행복도 순위가 높은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예외적 경향을 보인다”며 “경쟁적 사회구조가 삶의 만족도를 낮추고 주관적 건강을 낮게 평가하도록 이끈다”고 지적한다. 이에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건강증진 위주로 사회구조가 바뀌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내년부터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섭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생산인구가 줄고 부양인구가 늘면 우리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들을 하나씩 톺아보기 위해 연재를 시작합니다.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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