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홍 잠수사의 실화를 모델로 한 영화 ‘바다 호랑이’에서 주연을 맡은 이지훈 배우. 굿프로덕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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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세월호 참사 때 구조·수습 활동에 나섰다 후유증으로 고통받아온 한재명 잠수사의 별세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리고 며칠 뒤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을 그린 영화가 2025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정윤철 감독의 ‘바다 호랑이’다. ‘말아톤’(2005)으로 5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대립군’(2017)을 만들었던 상업영화 감독이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 김관홍 잠수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초저예산의 실험적 작품이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정 감독을 만나 다섯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세월호’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세월호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면서도 감히 쉽게 나설 수 없는 주제예요. 10년이라는 세월은 상처가 치유되기에는 아직 짧은 시간이죠. 광주민주화운동을 영화가 처음 다룬 ‘꽃잎’도 나오는 데 16년이 걸렸어요. 이를 정면으로 그린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훨씬 더 걸렸고요. 세월호는 여전히 다루기 버거운 주제지만 잠수사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 타인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이야기라서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 감독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영화로 만들려던 제작자 윤순환 굿프로덕션 대표의 제안으로 함께 2년간 시나리오를 썼다. 2021년 ‘4·16재단 문화콘텐츠 공모전’에서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됐지만, 투자를 받지 못해 영화로 나오지 못 할 뻔하다가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100억원 규모의 장편 대작으로 구상했어요. 거대하고 미로 같은 배 안에서 잠수사가 아이들을 한명씩 꽉 껴안고 나오는 장면에서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임팩트가 있을 거라고 봤죠.” 하지만 코로나로 영화 투자가 급냉각된데다 세월호라는 소재의 무게가 정 감독의 구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실상 영화화가 엎어진 상황에서 완성된 시나리오로 연기 수업을 하던 정 감독은 워크숍 삼아 촬영을 해보기로 했다. ‘범죄도시 3·4’ 등에서 형사로 나왔던 배우 이지훈이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나경수’ 역을 맡았다. 대형 연습실을 빌려 최소한의 소품으로 세트장처럼 꾸며 사흘간 촬영했다. “기록용으로 남기거나 유튜브에 올릴까 싶어 촬영했는데” 편집을 마치고 모니터 시사를 하니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거워서 개봉을 준비하게 됐다. 영화는 국가로부터 동료 잠수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했던 공우영 잠수사의 억울한 법정 싸움을 뼈대로 잠수사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그 고통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세월호 김관홍 잠수사 모델로 영화 만드는 정윤철 감독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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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한 무대에서 연극처럼 촬영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을 연상시키지만 집, 법정, 바닷속 등 장면을 분리하고 공간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도그빌’보다는 더 영화적이면서 독특한 실험적 작품이다. 특히 어두운 실내일 뿐이지만 물속에서 주검을 인양하는 장면은 사운드와 배우의 동작을 통해 진짜 물속처럼 숨 막히고 불안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흘 촬영에 들어간 비용은 1천만원이다. 개봉을 결정한 뒤 2회차 보충 촬영을 한, 총 5회차 촬영이 전부지만 정 감독은 “백억짜리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감정적 깊이의 70% 정도가 나와서 나 자신도 놀랐다”며 “촬영적 스케일 없이도 배우의 연기와 사운드가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바다 호랑이’가 “잠수사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헌신과 고통, 그리고 국가의 무책임에 대해 환기하는 주제적 측면뿐 아니라 영화 제작에서도 얼어붙은 영화판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동료 영화인들에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힘을 주고 싶어요. 이 영화의 개봉 자체가 기적과 같으니까요.”
큰 예산, 스타 배우들과 작업해오던 정 감독은 이번 도전을 통해 “열정만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던 이십 대 후반의 출발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 이후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방식이나 기획은 관객들에게 통하지 않는다”면서 “ 젊은 무당 캐릭터와 젊은 세대의 세계관과 맞아떨어진 ‘파묘’나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처럼 스토리 텔링을 풀어간 ‘서울의 봄’ 의 성공이 좋은 사례”라고 짚었다. 그는 “기획이 완전히 새롭든 예산을 대폭 낮추는 식으로 제작 방식을 바꾸든 이전과 다른 다양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바다호랑이’가 이렇게 영화를 찍을 수도 있다는 영감을 주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감독과 제작자, 배우와 스태프들까지 십시일반으로 재능을 모은 ‘바다호랑이’는 내년 초부터 배급과 마케팅 비용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윤철 감독은 ‘바다호랑이’의 개봉을 준비하며 “김관홍 잠수사의 유족에게 그분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된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영화 ‘바다 호랑이’. 굿프로덕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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