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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사도광산 뒤통수 맞은 한국…‘조선인 강제 동원’ 언급 끝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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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4일 일본 니이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일본 정부 쪽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내빈 인사말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사도·도쿄특파원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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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계십니다.”



24일 일본 정부 대표인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는 차분한 목소리로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서 일하다 희생된 이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 어디에서도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이나 노동’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이날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이쿠이나 정무관은 내빈 인사말에 “사도 광산 노동자들 가운데 전쟁 중 우리나라(일본)의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건너온 분들이 포함돼 있다”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위험하고 가혹한 갱도 내 환경 아래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고만 언급했다.



앞서 한·일 정부 차원의 추도식 협의 과정에 일본 쪽이 추도사에 “감사”라는 표현을 넣겠다는 요구를 우리 정부가 거부하면서 협상 자체가 삐걱거렸던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쿠이나 정무관은 이에 아랑곳없이 “앞 세대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다시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도식에 함께 했던 하나즈미 히데요 니가타현 지사 역시 “광산에서 채굴과 발전에 공헌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는 입장을 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에 약속했던 추도식이 5개월 만에 열렸지만 ‘반쪽짜리’ 추도식이 된 현장 공기는 차가웠다. 하루 전 한국 정부가 추도식 불참을 선언한 데다, 사도섬까지 찾아온 조선인 희생자 유족들마저 정부 뜻에 따라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카노 고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장은 “(한국 쪽에서) 참석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이다”라고만 말했다. 실제 이날 추도식 현장에 놓인 100여개 의자 가운데 한국 쪽 인사 자리 25개는 덩그러니 빈 상태였다.



지난 22일 일본 외무성이 추도식 대표로 이쿠이나 정무관을 발표한 뒤, 그가 과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는 보도도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쿠이나 정무관도 이를 의식한 듯 시종 굳은 표정으로 추도식 맨 앞자리를 지켰다. 추도식 뒤에는 ‘야스쿠니 참배를 한 게 사실이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 한 채, 뒷문을 통해 준비된 차량에 올라 서둘러 행사장을 떠났다.



비슷한 시각, 사도광산 조선인 희생자 유족들이 니가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사도로 건너왔다. 이들은 하루 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 등과 사도광산 옛 조선인 기숙사 ‘제 4 상애료’ 터 앞에서 별도 추모식을 열기로 했다. 사도광산 조선인강제노동자료집 출간 등에 참여한 아라이 마리 사도시 의원은 추도식 뒤 한국 기자들과 만나 “‘추모’라는 말은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오늘 일본 참석자들은 희생자들과 하나가 되어 추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사도(니가타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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