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신고 후 검거 생중계…‘사적 제재’, 법원이 제동
재판부 “범죄 의사 없던 사람도 유인할 수 있어”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7단독 김선범 판사는 전직 유튜버 A씨에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지난 13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마약사범을 꾀어내기 위해 채팅앱에서 28세 여성을 사칭하며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 먹고 싶다’는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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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관리법은 마약 매매·수수 등의 정보를 알리거나 제시하는 것을 금지한다. 법정에 선 A씨는 경찰 수사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위법성이 조각되는(없어지는) 정당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인 검거라는 목적이 있었다고 해도, 여성 행세 등은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없던 사람도 다른 마음을 먹게 할 수 있는 옳지 않은 행위”라며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A씨처럼 '정의 구현'을 내걸고 사적 제재에 나섰던 유튜버들이 오히려 심판대에 오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를 쫓아다니며 추적·검거 과정을 생중계해온 한 40대 유튜버는 지난 9월 추격 대상자를 사망 사고에 이르게 한 혐의로 최근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했던 유튜버 ‘전투토끼’와 그의 아내는 8월 재판에 넘겨졌다.
사적 제재 콘텐츠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사법 시스템과 국민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가기관의 형벌권 집행을 통한 처벌 속도와 수위에 답답함을 느끼는 시민들이 ‘속 시원한’ 사적 제재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적 제재는 통쾌한 복수를 빙자한 범죄”라며 “실체적 진실보단 자의적 진실을 주장하는 것이고, 과도한 복수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최종술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를 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과도한 사적 제재에 동조하지 않도록 인식을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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