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트럼프 2.0과 한국의 균형 외교 [뉴스룸에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8년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싱가포르=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계속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미국은 분명히 세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2017년 1월 출간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The Absent Superpower) 한국판 서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출간됐던 이 책에서 자이한은 트럼프 이전부터 시작된 미국의 고립주의 흐름이 세계를 뒤흔들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각 나라가 국제질서 부재, 각자도생의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며 냉전이 끝난 뒤에도 30년 이상 ‘세계에서 오지랖을 휘날리며 오만가지 일을 다 처리’했다. 하지만 누적된 피로감은 ‘미국 우선주의’에 올라탄 워싱턴 정치 이단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자이한은 석유를 함유하고 있는 암석 일종인 셰일에서 미국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얻어내 자급자족 경제망을 강화하고, 글로벌 이슈에서 멀어지면, 유럽과 러시아 간 전쟁과 중동·동아시아 충돌 등 ‘무질서 전쟁’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8년 전 그의 예상은 절반 정도만 맞았다. 코로나19라는 뜻밖의 변수 영향이 컸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하며 세계는 4년을 벌었다. 셰일혁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중동 전쟁은 확대일로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도 전쟁을 안심할 수 없는 상태다. 내년 1월 20일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 시추를 늘리자)’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하면 자이한 경고대로 세계는 2차 대전 후 80년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2기는 1기 때보다 노골적이다. 동맹국 안보 부담 강화부터 시작해 해외 군사 개입을 줄이고, 국제 제도와 기구는 무시하겠다는 고집이 강해졌다. 또 무역 관세 장벽은 더 높이고, 미국으로 제조업 귀환을 꾀하는 ‘리쇼어링’ 흡입력도 세졌다.
한국일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페루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리마 델피네스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리마=왕태석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의 경찰’이 사라지는 시기, 문제는 우리의 준비다. 트럼프 2.0이 4년 유예됐던 기간 한국은 정권 교체 혼란 속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한 외교안보 국면을 이어왔다. 한미일 동맹은 강화하고, 한일관계도 나름 회복됐지만, 남북대화는 단절됐다. 중국과는 어정쩡했고, 북방외교가 힘을 잃으면서 북러 동맹 탄생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윤석열 정부는 ‘실세’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을 중국대사에 임명하고,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올인 외교’에서 벗어나겠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이제는 조금 더 정교한 준비가 필요해졌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 외교는 기저에 깔되, 국익을 앞세우는 트럼프에 맞춰 우리도 실리와 실용, ‘균형 외교’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이 트럼프의 구애에 확 돌아서 한국 ‘패싱’이 이뤄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미 트럼프는 2기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에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알렉스 웡을 임명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2.0과 함께할 2년 반을 앞둔 윤 정부가 남북관계부터 시작해서 모든 외교안보 기조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정상원 국제부장 ornot@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