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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팩트체크] 뉴진스 하니는 근로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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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성 판단은 '사용종속관계'…대법원 판례서 구체화

뮤지컬 배우가 근로로 인정받기도…사회변화 수용 요구 늘어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한해 수십억 원을 버는 연예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노동 당국의 입장이 나오자 근로자임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온라인에선 '1년에 50억원 넘게 받는 하니가 근로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하니는 어떤 이유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나. 그리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연합뉴스

증언하는 뉴진스 하니
(서울=연합뉴스) 뉴진스 멤버 하니 팜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증언하고 있다. 2024.10.15 [국회사진기자단] photo@yna.co.kr


◇ 근로자 법적 정의 추상적…'사용종속관계'가 기준 역할

하니가 직장 내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노동 당국이 근로자성을 먼저 살펴본 것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에선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 정의 조항은 단순하지만 추상적이어서 근로자임을 판정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그래서 이른바 '사용종속관계' 또는 '사용종속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는 쉽게 말하면 사용자의 처분에 따라 근로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사용종속관계라는 개념의 유래를 쫓아가 보면 1987년 대법원 판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법원은 도급계약을 맺어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사용자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특정 노무만 제공하는 것이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민법에서 타인의 노무를 이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계약의 종류로 고용계약, 도급계약, 위임계약 등 세 가지를 명시하고 있다.

고용계약은 '노무 제공'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을,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에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을, 위임계약은 '사무 처리'를 위탁하는 계약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고용계약이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즉, 고용계약을 맺어 노무를 제공한 자는 일부 예외 사례를 제외하고 거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

1987년 대법원 판례는 고용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했더라도 사용종속관계가 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며 사용종속관계라는 개념을 앞세워 근로자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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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 사용종속관계 기준 구체화…종합적으로 요건 고려

이후 이 사용종속관계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 점차 구체화했다.

대법원은 1994년 판결에서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에 관계 없이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속적인 관계를 판단하는 요소로 ①업무의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②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③사용자의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ㆍ감독을 받는지 ④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가 지정되고 이에 구속받지는 ⑤근로자 스스로가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케 하는 등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지 ⑥비품, 원자재나 작업 도구 등을 누가 소유하는지 ⑦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⑧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는지 ⑨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 하는지 ⑩근로 제공 관계가 계속되는지 ⑪사용자에의 전속성이 있는지 ⑫다른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을 열거했다.

이어 2006년 판결에선 사용자의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ㆍ감독'을 '상당한 지휘ㆍ감독'으로 지휘ㆍ감독의 정도를 완화했다. 또한 기본급이나 고정급,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의 요건은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 이런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다.

노동 당국이 이번에 하니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유로 "상당한 지휘ㆍ감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회사 취업규칙 등 사내 규범을 적용받지 않고", "일정한 근무 시간이나 근무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지급된 금액은 근로의 대가로 지급된 것이 아니고",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점" 등 여러 사유를 열거한 것도 대법원의 이런 판단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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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노예계약' 논란(CG)
[연합뉴스TV 제공]


◇ 과거 연예인 전속계약 두고 '노예계약' 논란

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 주장은 '진실 공방' 중이지만 연예인과 소속 연예기획사 간 갈등은 유래가 깊다.

특히 2009년 동방신기의 일부 멤버와 SM엔터테인먼트간 법적 분쟁과 고(故) 장자연 파문을 계기로 '노예계약' 논란이 일면서 연예인과 연예기획사가 체결한 전속계약의 불공정성이 사회문제화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전속계약서 제정,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의 입법 등을 통해 일정 정도 제도가 개선됐지만 전속계약의 전속성에서 비롯한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연예인은 계약상 소속된 기획사의 승인 없이는 연예 활동을 할 수 없어 연예인이 기획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연예인이 소속사와 맺은 전속매니지먼트 계약은 대법원 판례에서 민법상 위임과 비슷한 무명계약(민법에 열거된 종류의 계약이 아닌 계약)으로 간주한다.

위임계약은 근로계약으로 볼 소지가 없어 계약 자체의 성격만 놓고 따지면 연예인이 기획사에 소속된 근로자로 인정되기는 어렵다.

노동 당국도 이 대법원 판례를 하니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사유로 거론했다.

◇ 뮤지컬 배우가 근로자성 인정받은 사례도

연예인, 넓게는 대중문화예술인이 근로자로 인정된 사례는 없을까.

2020년 3월 뮤지컬 '친정엄마'의 참여 배우와 스태프들이 고용노동부 서울 강남지청으로부터 체불임금 확인서를 발급받아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소액체당금 제도는 사업체의 폐업으로 사업주의 지급 능력이 없을 때 정부가 근로자에게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최대 1천만원까지 대신 지급하는 구제 제도다. 뮤지컬 배우가 소액체당금 지급 대상이 됐다는 것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이 사건을 진행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따르면 '친정엄마'의 예술인들이 연출ㆍ안무 감독의 지휘ㆍ감독을 받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정하게 연습ㆍ공연한 점 등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데에 주효하게 작용했다.

뮤지컬이라는 공연예술 특성상 사용종속관계를 상대적으로 쉽게 입증할 수 있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대중문화예술인이 근로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특정 분야에 국한됐다고 볼 수는 없다.

대중문화산업법은 뮤지컬 배우와 아이돌 가수 등을 '대중문화예술인'으로 정의한다. 즉, 대중문화예술산업에서 연기ㆍ무용ㆍ연주ㆍ가창ㆍ낭독, 그 밖의 예능과 관련한 용역을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대중문화산업법은 이 대중문화예술인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경우엔 근로기준법을 우선 적용한다"며 대중문화예술인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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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종속관계 일러스트
[생성AI 챗GPT 제작]


◇ 사용종속성 '양날의 검'…근로자 개념 확대에 장애로 작용

사용종속관계라는 개념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근로자를 유연하게 사고하는 데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근로자성 판단기준: 사용종속성을 넘어'(2020)란 논문에 따르면 사용종속관계라는 개념은 근로기준법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근로자나 근로, 임금 등을 정의할 때 '사용'이나 '종속'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는다.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할 뿐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근로의 권리'가 사용종속성이 있는 근로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서울대 총장을 지냈던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헌법학'이라는 저서에서 근로의 권리를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육체적ㆍ정신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활동을 사용자에 종속된 근로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김린 교수는 앞선 논문에서 헌법 제32조 제1항의 근로의 권리, 제3항의 근로조건의 기준 법정화,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에 비춰 봤을 때 "사용종속관계를 근로자성의 핵심적인 개념 징표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사용종속관계론의 규범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근로의 권리도 약해져만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용종속성이 일정한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지휘ㆍ감독을 받으며 일하던 과거 시대의 유물이어서 다양한 근로 형태를 포괄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자영업자 사회법제 연구'(2019)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과 자본의 결합 양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즉 노동관리 양식이 과정 관리에서 성과 관리로 변하면서 종속성이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를 가르는 기준으로 기능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새롭게 부상하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과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종속이 더는 자율의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종속과 자율이 결합해 새로운 종속성을 낳는 시대가 됐다.

'친정엄마' 사건을 담당했던 김현호 노무사는 "과거 사고를 가지고 계약서 조항에 천착해 문전박대를 하는 (근로) 감독관들이 부지기수다"라며 "(새로운) 조항을 제정할 필요도 있지만 노동부가 예술 활동에 대한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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