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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응준의 포스트잇] [40] 진정한 건투(健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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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도움 되는 말씀 부탁드린다”는 요청은 성공한 이와 인격자가 받아야 어울릴진대 저는 실패와 부끄러움 투성이입니다. 그나마 봐줄 거라곤 글 하나 꾸준히 써왔다는 것뿐인데, 부족한 재주였으니 그마저도 흠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호기심으로나마 다음 제 ‘견해(見解)’ 두 가지를 참고하시길 바라는 것은, 삶은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신비롭기 때문입니다. 먼저, 모든 사람들이 곶감을 좋아한다고 상상해봅시다. 곶감들이 막대에 꿰어져 있습니다. 그 곶감들을 많이 빼먹은 사람과, 한두 개조차 맛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할 적에, 나는 당신이 후자였으면 합니다. 단, 곶감을 입에 넣는 일이 계속 유보됨에도 불구하고 절실한 노력 속에서 잘 견뎌내는 후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훗날 뒤돌아보니, 전자의 막대에는 곶감이 하나도 남지 않았고, 당신의 막대에는 곶감들이 그대로입니다. 당신에게는 운이 전혀 따르지 않았나 봅니다.

한데 웬걸, 도리어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어두워하고 있습니다. 곶감 빼먹는 즐거움이 고갈되고 나니 그 텅 빈 막대가 지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반면 당신은 막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곶감들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곶감을 먹고 안 먹고와는 상관없이 값진 인생을 살아냈다는 것을. 물론 힘들기는 했지만, 곶감을 먹을 수 없었기에 강해지고 진실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정말 요긴한 것은 곶감이 아니라 ‘곶감 없음’이라는 것을. 비로소 당신은 막대에서 곶감 하나를 빼내 입안으로 넣고는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인생의 맛입니다. 이제 곶감은 당신을 괴물로도, 당신의 세상을 불행하게도 만들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어느 여가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어느 깊은 밤 TV 속 음악 전문 프로그램에서 한 여가수가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리 많지 않은 팬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고집하는 아티스트였는데, 무심코 나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녀의 음반들을 손으로 짚어보았습니다. 어? 이렇게 많이? 열한 장이나 되었습니다. 순간, 나는 ‘얼어붙은 강바닥을 내려치는 도끼’처럼 알게 되었습니다. 아, 내가 저 여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만이 아니라 그녀가 겪고 있는 ‘어떤 소외’까지를 함께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만약 당신이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도 외로운 사람일 때, 세상 어딘가에서는 내가 그 여가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반드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감당하는 그 소외는 당신의 보석이자 무기(Weapon)입니다. 사람은 과소평가받으며 살아야 여러모로 좋습니다. 과대평가받는 사람이 가장 불행합니다. 어둠이 아니라 빛이 눈을 멀게 합니다. 어둠 속에 있어야 스스로 등불이 됩니다. 삶이란 자물쇠 모양을 하고 있기에 매번 죽을 고비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더욱 위의 두 가지 진실을 잊지 마십시오. 청춘만이 아닌 당신의 전 생애,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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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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