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5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동시에 8% 넘게 폭락한 블랙먼데이 이후 서울 증시가 반등하지 못한 채 횡보세를 거듭하고 있다. 서울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좀비 상장기업들을 빨리 퇴출하고, 소액주주를 희생양으로 삼는 증시 제도와 관행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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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에서 이른바 ‘쪼개기’로 분할한 자(子)회사 상장기업들의 시가 총액이 전체 시총의 1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복 상장을 의미하는 쪼개기 상장은 주주 가치를 희석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선 금기시하는 관행이다. 그런데 서울 증시의 중복 상장 시가총액 비율은 미국(0.35%)의 52배에 달하고, 일본(4.3%), 중국(1.98%)보다 훨씬 높다. 한국도 2000년대 초반까진 중복 상장 비율이 4%대에 그쳤지만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카카오가 카카오뱅크를, SK이노베이션이 SKIET를 물적 분할하는 등 기업들이 새 투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쪼개기 상장에 열을 올린 결과, 20년 새 그 비율이 4배로 뛰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 상장기업은 검증된 건실한 기업으로 간주되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못하다. 국내 상장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은 ‘좀비 기업’ 상태다. 전체 상장기업 중 51%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 미만이다. 주가가 기업의 보유 자산 가치보다 낮은 ‘헐값’이란 뜻이다. 선진국 증시는 이 비율이 평균 3.2배이다. 한국 증시에서는 기업이 장기간 적자에 빠져도 상장기업으로 남아 있고,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한 요인이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5배인 미국의 상장기업 수가 5500개인데 비해 한국의 상장기업 수는 2600개에 달한다. 미국 나스닥에선 상장기업 주가가 한 달 이상 1달러 미만이면 경고를 하고, 이후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상장폐지 대상에 올린다. 반면 한국 증시에선 기업 퇴출 사유가 발생해도 4년 이상 버틸 수 있다.
시중에선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정설화돼 가고 있다. 한국 증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선 부실 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할 필요가 있다. 소액 주주를 호구로 만드는 쪼개기 상장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세계 꼴찌 수준의 주주 환원도 바꿔야 한다. 글로벌 기준과 거리가 먼 증시 제도와 관행을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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