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우승에 메이저 더 시니어 오픈 제패
탄산음료, 담배, 술 끊고 훈련으로 이룬 성과
대회 꾸준히 개최, 10년 더 선수 생활 목표
“은퇴 선수 경제적 어려움 없도록 하고 싶다”
최경주가 서울 용산구 동빙고 근린공을 걷고 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더 선수 생활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강진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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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골프계에서 다양한 기록을 작성한 최경주도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미국 듀크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아들 강준 군과 동반 라운드를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최경주재단 사무실에서 가진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이벤트 대회인 PNC 챔피언십에 출전 신청을 해놨다. 아들과 즐거운 라운드를 하는 것이 기다려진다"고 활짝 웃었다. PNC 챔피언십은 메이저 대회 및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와 가족이 출전하는 대회다. 동반자는 프로 자격이 없어야 한다. "강준이가 대학교 졸업하고 프로가 되려면 2년 반 정도 남았어요. 그때까지 저도 투어에 나갈 수 있는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최경주와의 일문일답.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시즌을 마친 뒤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지난주 화요일(1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귀국했다. 국내로 돌아온 뒤 재단 행사로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CGN(온누리선교재단에서 만든 선교 미디어) 홍보대사까지 맡았다. 여러 가지 밀려있는 약속도 많다. 정말 바쁜 일주일이 될 것 같다.
-비시즌에도 미국에서 바쁘게 보낼 텐데.
▲집이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다. 거기에도 일정이 빡빡하다. 매년 겨울 저희 집에서 꿈나무 동계 훈련을 한다. 시설 보강도 해야 한다. 저 역시 현역이니까 준비할 것이 많다. 꿈나무랑 같이하는 것도 즐겁다. 같이 연습하면 얘들도 좋아한다. 같이 연습하면서 샷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아한다. 아무래도 혼자 하는 것보다 연습량은 줄어들지만 꿈나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루 종일 같이 하니까 몸도 좋아지는 것 같다.
최경주가 지난 7월 영국 스코틀랜드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 직후 클라레 저그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커누스티(스코틀랜드)=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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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시니어 투어의 메이저 대회인 더 시니어 오픈과 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낸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5년 전에 갑상샘 수술을 받았다. 몸무게도 79㎏까지 빠졌다. 회복하는데 4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탄산음료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최대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전성기 몸무게인 92㎏이다. 몸을 관리하니까 아침에 개운하다. 쓰러진 나무가 다시 선 느낌이다. 예전에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은 떴지만 몸은 일어나기 싫었다. 4~5년 사이에 체계적인 운동을 통해 몸을 만들었다.
-하루 훈련량이 궁금한데.
▲최소 4시간 이상을 한다. 라운드를 뺀 시간이다. 스쾃, 팔굽혀펴기, 손악력 훈련 등은 매일 한다. 지금은 140파운드짜리 악력기를 쓰는데 점차 익숙해지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처럼 200파운드짜리를 써보려고 한다. 시니어투어에선 쇼트게임이 중요하다. 샷 훈련 중 쇼트게임을 30% 정도 한다. 쇼트게임은 감이 떨어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벙커 샷은 2시간 정도 한다.
-별명이 ‘벙커의 달인’이다. 아직도 러프보다는 벙커가 편한가.
▲잔디는 속인다. 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벙커는 속이지 않는다. 페이스가 제대로 들어가면 무조건 공을 멈출 수 있다. 게리 플레이어(남아공)도 벙커에서 살다시피 한 전설적인 골퍼다. 벙커 샷이 훈련의 80%를 차지했다. 어릴 적부터 벙커를 좋아했다. 완도 명사십리에서 5시간 정도 벙커 연습을 한 적도 있다. 벙커 샷을 하는 요령을 누가 알려줬다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것이다. 모래 뒤를 치는 간격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벙커에 공이 들어가면 나름대로 정해놓은 법칙이 있다. 평생 써먹고 있다.
-지난 5월에 열렸던 SK텔레콤 오픈을 빼놓을 수 없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100만번을 쳐도 올린다는 보장이 없다. 1차 연장전에서 두 번째 샷을 워터 해저드 구역으로 보냈다. 뒤땅을 쳤다. 신기하게 공은 개울 안에 돌로 둘러싸여 작은 섬처럼 생긴 곳에 살포시 놓여 있었다. 공 30㎝ 앞에 돌이 있어 54도 웨지보다 59도 웨지로 샷을 했는데 그린 위에 잘 올라가 파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2차 연장전에서 파를 잡아 우승했다. 평생 못 잊을 장면이 될 것이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을 봤다. 이렇게 보여주는 것도 간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을 했는데.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2000년 12월 PGA투어에 도전하기 위해 퀄리파잉(Q) 스쿨을 봤다. 엄청난 압박감이 밀려왔다. 마지막 날 6라운드 18번 홀에서 4m 오르막 훅 라이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라인을 보는 데 마음의 평안함이 왔다. 하나님이 하얀 분필로 라인을 보여주셨다. 이 퍼팅이 들어가면서 Q 스쿨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때 상황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후 한 번도 Q 스쿨을 가지 않았다. 올해 SK텔레콤 오픈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런 장면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최경주가 지난 5월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연장 우승을 한 뒤 18번 홀의 작은 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KPG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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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열심히 공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 배울 것이 있나.
▲지금 나이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다. 공부를 해야 한다. 시니어 투어를 주름잡고 있는 (베른하르트) 랑거(독일)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눈과 육체, 정신력이 좋다. 거리 나가는 후배하고 붙어도 자기 게임을 한다. 흔들림이 없다. 랑거는 철저하게 루틴을 지킨다. 먹는 것부터 스트레칭, 운동 등이 모두 포함된다. 선수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운동은 절대 건너뛰지 않는다. 한 계단씩 다 한다. 설렁설렁하지 않는다. 신앙심도 좋다.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스타일이다.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선수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훈련할 때 집중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하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훈련양도 줄어들게 된다.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선 운동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게 중요하다. 항상 와이프(김현정 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훈련할 때는 절대 전화하지 않는다. 저한테 은인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10승을 꼭 채우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아직도 변함이 없나.
▲(웃으면서) PGA투어에서 10승을 채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의 힘으로 되진 않을 것이다. 정규투어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300야드는 쳐야 한다. 지금은 270야드도 안 된다. 젊은 선수들과 60야드 이상 차이가 난다. 몸의 탄력성을 유지하면서 정확하게 멀리 치는 것이 숙제다.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캐리로 270~280야드는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거리만 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준비를 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시니어투어의 경우 메이저 대회를 뺀 대회는 카트를 이용할 수 있지만 절대 카트를 타지 않는다.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래 앉아 있으면 골반 로테이션에 문제가 온다. 골프는 전신 운동이다. 타이거 우즈가(미국) 고생하는 이유는 교통사고 이후 발목 부상 때문이다. 임팩트 때 모든 몸이 한 동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상체가 먼저 돌아간다. 공의 변형이 오기 마련이다. 스윙 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라운드를 할 때도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
최경주는 미국 듀크대에 재학 중인 막내아들 강준군과 PGA투어 무대를 함께 뛰는 것이 꿈이다. 사진제공=최경주재단 |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그 이후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체력은 40대 시절보다 좋아진 것 같다. 선수는 10년 정도 더 해보려고 한다. 은퇴 이후 개인 사업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후대를 육성하고 싶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 공동체에서 좋은 인성을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 제 신조는 인사성, 절제, 겸손이다. 어릴 때부터 인사를 잘하라는 말을 많이 해준다. 책임감 넘치고, 인사성이 좋고, 골프도 잘 치고, 에티켓이 좋은 인재를 키우고 싶다. 받은 만큼 보답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약자를 돌보는 좋은 의인을 만들고 싶다.
-장학재단을 17년째 이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주변에 좋은 의인들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골프계를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재단에 관심을 갖게 됐고, 후원자가 생겼다. 특히 꿈나무들이 잘 자라준 것이 고맙다. 올해 15회 신입생을 뽑는다. 어린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항상 인사를 하라고 한다. 또 선수로서 늑장 플레이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이 안 되는 것에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지만 동반 플레이어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저도 30년이 넘는 선수 생활을 하는데 한 번도 상대를 탓한 적이 없다. 꿈나무들에게 기본부터 가르친다. 에티켓, 먹는 자세, 말하는 것, 인터뷰, 그립 잡는 거 등이다. 기본 베이스를 잘해 놓으면 그대로 간다.
최경주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골프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강진형 기자 |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꾸준하게 개최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골퍼의 이름을 걸고 하는 대회가 없다. 미국에 가면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이상 미국), 우즈 등이 호스트로 나선 대회가 많다. 선수들에게 엄청 잘해준다. 저도 특별한 인비테이셔널을 통해 선수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대회를 할 때마다 선수들에게 최대한 해줄 수 있는 게 뭐일까 고민한다.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하는 것도 한국프로골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대회를 보면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한 측면도 있다. 호스트와 국내 남자 골프계, 골프장 측이 모두 만족하고 좋아하는 대회로 정착시키고 싶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생각인가.
▲선수들이 경기를 잘 할 수 있는 대회를 꾸준하게 이어가겠다. 변별력이 있는 대회를 선물하고 싶다. 어느 곳에 가더라고 경쟁력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다. 남자들도 곧 좋은 시대가 올 것이다. 남자 대회는 훨씬 다이내믹하다. 한국 남자 골프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은퇴 이후 돈이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의 경우 골퍼가 은퇴하면 수영장 관리 책임자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한다. 국내처럼 은퇴 이후 삶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좋은 선수가 꾸준하게 나올 수는 없다. 스포츠에 관련된 전반적인 문화와 제도 등을 개선 시킬 필요가 있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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