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 시청사 앞에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독일 여성단체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과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함께 집회를 열었다.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회원들이 평화의 소녀상 ‘아리’ 뒤에서 핏자국이 물든 흰 천을 두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회원들은 북 소리에 맞춰 앞과 뒤를 돌아보고, 사회자는 “남성들이여, 당신이 침묵할 때 당신의 딸과 누이, 어머니가 죽는다. 당신은 침묵하는가?” 라고 말하며 폭력의 종식을 위한 남성들의 책임을 되묻는다. 사진 베를린 트렙토브 쾨페니크 자치구 청년 녹색당 대표 산티아고 로드리게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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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Una Menos(니 우나 메노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은 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앞에 모인 사람들이 외쳤다. 아르헨티나어로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는 뜻의 ‘니 우나 메노스’는 2015년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모든 살해)를 반대하며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의 구호다. 이날 독일의 대표적인 여성단체 ‘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들’과 소녀상을 세운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함께 집회를 열어 가부장적 폭력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여성을 추모하고, 철거 위기에 몰린 소녀상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집회에 참가한 80여명은 소녀상이 위치한 미테구에서 티어가르텐 시청사까지 행진하며 “페미사이드를 멈춰라” “우리는 여기에 와 있고,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당신들이 ‘아리(소녀상의 이름)’를 훔쳐가려 하기 때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코리아협의회는 “우리는 오늘 ‘위안부’ 여성들을 기린다. 전쟁 중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위안부’ 여성들을 기리는 상징인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가부장적 구조가 독일에서도 여전히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진 베를린 트렙토브 쾨페니크 자치구 청년 녹색당 대표 산티아고 로드리게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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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미테구의 슈테파니 램링거 구청장은 지난달 31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고, 이를 어기면 3000유로(약 44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통지했다. 그러나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미테구청의 명령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고, 현재까지 법원의 판단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베를린 트렙토브 쾨페니크 자치구의 청년 녹색당 대표 산티아고 로드리게즈는 “우리 녹색당은 소녀상의 영원한 보존을 지지한다”며 같은 당 소속인 슈테파니 램링거 미테구청장의 철거 결정을 비판했다. 그는 “녹색당이 이끄는 구청이 계속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건 역사적 의무에 대한 깊은 무책임의 표시일 뿐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당의 입장을 존중할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범죄 피해자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 가해자의 편에 서는 정치인들과 나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은 25일(현지시각) 독일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들’과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를 비롯해 독일의 여성단체 회원들이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부터 티어가르텐 시청사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산티아고 로드리게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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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주간을 맞아 베를린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는 항의 시위가 열렸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23일 400개 이상의 단체들 주도로 수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25일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젠더에 기반한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직접 글을 올려 “3분에 한 번씩 여성 또는 소녀들이 집에서 폭력을 경험한다. 이것도 경찰이 통계한 범죄에 한정된 것일 뿐”이라며 “여성을 위한 쉼터와 상담 서비스, 의지할만한 재정 등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젠더 기반 폭력에 의해 살해 당한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든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마드리드/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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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은 1999년 11월25일을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로 공식 제정했다. 유엔 여성기구와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DOC)는 이날 지난해에만 전세계에서 8만5000여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의도적으로 살해됐다고 밝혔다. 독일도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어, 지난해엔 938명이 페미사이드의 희생자가 되거나 그러한 위험에 처했고, 이들 중 360명이 실제 사망했다고 데페아(DPA) 통신은 보도했다.
또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에서 지난 15년 동안 나온 언론 보도 건수만 집계했을 때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된 여성과 주변인은 최소 1672명이고, 지난 한 해 동안 최소 192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2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세계 여성 폭력 철폐의 날 기념집회에 참석한 여성들. 밀라노/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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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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