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국민의 힘과 민주당은 현재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 및 총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 기반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 개정 방향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여기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회사의 기업 가치 제고와 부합하는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이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상법 개정은 불가피하다. '지능順으로 국장 떠나 미장 간다'는 웃픈 자조는 자칫 자본시장 대붕괴로 이어져 공포의 탄식으로 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2014년 13.9억불에서 올해 1,013억불로 약 72배 폭증했다. 이미 '국장' 이탈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탈출을 방치하면 해외 투자자들까지 이 행렬에 가세할 수 있다. 한국 자본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주지하듯 한국 상장기업들과 자본시장의 일방적인 지배주주 편들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많은 지배주주들은 창의적이며 편·불법적 방식으로 자본시장에서 자신들과 그다음 세대들의 지분 가치를 높여 지배력을 강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감몰아주기 방식이 들통나면, 합병이나 분할 카드를 꺼내 그 짓을 계속했다. 인적 분할 과정에서 의결권이 없는 모회사 자사주는 의결권 있는 신설회사 주식으로 둔갑하는 마법 같은 일도 발생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상장사 오너들이 코 묻은 개미 투자자들의 돈으로 부를 키워 온 것이다.
따라서 개미 투자자들의 엑소더스 현상으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 병세는 위중하다. 비유하자면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와도 같다. 응급실 환자에게는 무조건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일단 동원 가능한 모든 의료적 수단들을 강구하여 일단 살려 놓고 봐야 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까닭이다. 이 점에서 이사들에게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에까지 충실의무를 부여하고자 하는 여야 정당의 상법 개정안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지금이라도 당장 추진해야 한다. 분명 당위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처방에는 단기 효과와 그 영향도 고려해야 하지만 중장기적 측면들도 함께 봐야 한다. 또 비유를 들자면 응급처방 이후에는 반드시 체질 강화, 기능 개선, 보약 처방 등도 뒤따라야 비로소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근거한 상법 개정안으로 인한 미래의 한국 자본시장과 기업들의 모습을 예단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점들을 방비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절대선은 아니다. 오히려 주주자본주의 강화되면 될수록 목소리가 높은 단기투자자들이 자칫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고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회사를 인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7년 Joseph L. Bower와 Lynn S. Paine이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The Error at the Heart of Corporate Leadership"에는 주주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즉 주주중심주의(Shareholder Primacy)는 기업 리더십의 잘못된 원칙이며, 기업의 장기적 건전성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총주주환원율(Total Shareholder Return)에 치중한 의사결정은 혁신과 지속 가능성의 동력을 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두 연구자들은 그 대안으로서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경영자들은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지구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이익과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새로운 자본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즉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혹은 ESG자본주의가 그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유럽의 그린 딜, ESG공시 의무화, 연기금 투자자들의 ESG투자 확대 등은 그 증거들이다. 더군다나 인공지능, 로봇화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 패러다임 대전환, 기후기술, 순환경제 등 저탄소사회로의 게임 체인지 시대에서 주주자본주의 강화는 단기적 재무성과의 함정으로 인도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자본지출(CaPEX)과 불확실성을 기피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피보팅(Pivoting)을 가로 막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미래 청사진을 어둡게 할 수 있다.
상법 개정은 과거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미래의 예상 문제들까지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아울러 ESG공시, ESG실사, 탄소중립 및 녹색성장기본법 등 여타 규범이나 규정들과의 정합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주주자본주의 강화 시 미국 등에서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응급조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이후의 장기처방이 준비되고 그것을 밀도 있게 실천하지 못한다면 환자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는 까닭이다. 한국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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