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백희성은 건축가만이 할 수 있는 공간적 상상을 바탕으로 독특하면서도 사색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작가가 실제로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길을 걷다가 오래되고 아름다운 집이 보이면,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쪽지를 적어 우편함에 넣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편지에 응답해준 저택 주인들이 있었고, 백희성 작가는 파리의 오래된 집들의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주인들로부터 그 공간에 스며있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기억들을 전해 듣는다.
소설은 바로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와를 통해서 느낀 것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저마다의 깊은 사연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짧은 문장 하나에 건축가 백희성이 세상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공간은 물질만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이야기로도 채워질 수 있으며, 바로 그런 곳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사람의 공간'이라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한 천재 건축가의 예술관을 담은 소설이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김성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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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세계 (유린 지음 / 도밍 그림 / 고블)
서브컬처 덕후로서 체감한 올해의 장르소설 메인 키워드는 단연코 '공포'와 '괴담'이다. 그중에서도 <괴이현상 실종자수색연합>(안전가옥)이나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KW북스, 카카오페이지) 같은 나폴리탄 괴담 장르가 여러 공포소설 가운데 좀 더 두각을 드러냈다.
'나폴리탄 괴담'은 2003년 여름 일본의 괴담 커뮤니티에 게시된 동명의 짧은 소설(원제는 <恐怖のナポリタン>)에서 파생된 공포의 하위 장르이다. 다양한 서술 트릭으로 읽는 이의 상상력을 부추기고, 미지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이 '나폴리탄 괴담' 류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나폴리탄 괴담 장르는 미지에 대한 공포를 다룬다는 점에서 크툴루나 코즈믹 호러와도 곧잘 연결되고는 한다. 그중에서도 괴기한 일이 벌어지는 장소와 이에 대한 금기사항으로 서술 대상을 한정한 '규칙 괴담'은 읽는 이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나폴리탄 괴담의 대표적인 하위 장르인데, 앞서 언급한 <괴이현상 실종자수색연합>과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도 이러한 규칙 괴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의 공포는 수동성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나폴리탄 괴담, 그중에서도 '규칙 괴담'의 유행으로 넘어가며 변화하게 된다. 단방향 소통 구조 아래에서 독자는 서술자가 전하는 공포를 무력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던 과거와 달리, 규칙 괴담이라는 파생 장르는 상호 소통하며 독자의 능동성을 적극 활용한다. 규칙 괴담의 알맹이는 캐릭터나 시간에 따라 서술되는 어떤 사건이 아닌, 공포스러운 환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규칙 그 자체이다. 그러니 자연히 읽는 독자는 규칙을 읽으며 자신이 해당 규칙 괴담 속 공간 배경에 실제로 놓여 있다고 상상하는 일종의 '롤플레잉' 상태가 된다. 가령, <산장 투숙객을 위한 이용 안내서>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만약 오전 1시까지 산장으로 돌아오지 않은 일행이 있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 온다 해도 무시하십시오. 그것 또한 일행분이 아닙니다."
함께 등산을 갔다가 실종된 친구가 귀신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한 적 있는 흔한 괴담이지만, 이것이 감정을 배제한 규칙이 되는 순간 괴담은 훨씬 다채로워진다. 규칙을 읽는 이, 즉 저마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산장 투숙객'이 된 독자에 의해 수백, 수천 갈래의 괴담이 한자리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웹소설산업이 부흥한 뒤 작품들은 독자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 하는 형태로 나아갔다. 플랫폼 일일 연재의 기본형부터 미리 써 놓은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를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AI를 이용해 결말 이후 작품의 등장인물과 독자가 대화하며 외전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소통의 방법은 날이 갈수록 무궁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포소설만큼은 이러한 웹 공간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듯해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폴리탄 괴담', '규칙 괴담'을 적극 활용한 작품들이 대거 나타나다니 괴담 덕후로서는 반가운 상황이다.
<너머의 세계>는 가장 기본적인 나폴리탄 괴담들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다. 위에서 언급한 <산장 투숙객을 위한 이용 안내서>를 시작으로, 규칙 괴담을 포함한 여러 나폴리탄 괴담을 한 권에 모아 정리했다. 재미있는 것은 단편 작품마다 내지 디자인을 다르게 주고 콘셉트에 걸맞은 일러스트를 삽입해 읽는 이의 '롤플레잉'을 도왔다는 것이다. 90년대 컴퓨터의 오래된 UI나 아날로그한 전단지 디자인, 낡은 일기장 등 콘셉트를 완벽 이해한 시각적 서포트가 섬찟한 글의 묘미를 두 배, 세 배 북돋운다. 나폴리탄 괴담, 규칙 괴담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괴담 입문자가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책. (박소진 / 웹소설작가·문화평론가·9N비평연대)
■정정 가능성의 철학 (아즈마 히로키 지음 / 김경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무엇이든 '정정 가능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아무 말도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정정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다. 이 책은 괜찮은 철학 교양서지만, '무엇'을 정정해야 하는지에 관한 측면에서 뚜렷한 답변을 주진 않는다. 때문에 세계에 관한 해석이나 주장에 관해 저자와 논박을 준비하는 독자가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사유의 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은 나름대로 미더울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렇게 쓰였지만, '정정 가능성'이란 말은 '민주주의'라는 말과 꽤 유사한 개념이다. 혹자는 '민주주의'라는 말을 '텅 빈 기표'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는 모든 국가가 본인들이 민주주의라고 한다. 미국도 민주주의 국가고, 중국도, 북한도, 러시아도 민주주의 국가다.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면, 민주주의는 텅 빈 기표인 게 맞다.
다만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 어원을 보자면, '인민의 자기 통치'이다. 이 단어의 주인은 인민이다. 대체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걸 어떤 방식으로든 실현하려는 게 민주주의이다. 그렇다면 '정정 가능성'이란 개념은 다시 '민주주의'의 자장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인민 즉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닌 '무엇'을 정정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거나 혹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정정할 것인가. 그 판단을 위한 사유의 시작으로써 이 책은 괜찮다. (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 기획자·9N비평연대)
맹준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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