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본에서 도널드 트럼프(왼쪽) 당시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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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지난 9월 말부터 잇따라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꺼내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8%에 그치자 연간 목표치인 ‘5% 안팎’ 달성을 위해 극약 처방을 내린 것이다. 덕분에 중국의 주요 경기 지표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중국 지도부도 올해 목표치 달성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적용을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앞으로 더욱 고조될 ‘무역 갈등’은 중국 경제 회복에 최대 변수로 꼽히고 있다.
10조위안 재정 긴급 투입
지난 11월 8일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돼온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총 10조위안(약 1940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지방정부 부채 한도를 6조위안(약 1164조원) 증액하고, 향후 5년간 특별채권을 발행해 총 4조위안(약 776조원)을 부채 해소에 사용한다는 구상이다.10조위안은 전체 중국 GDP의 약 8%에 달하는 규모다.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장관)은 이와 관련해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유 채무의 위험을 낮추고 숨겨진 부채를 단호히 억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간 매년 2조위안씩 총 6조위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방정부의 부채 한도는 29조5200억위안(약 5727조원)에서 올해 말까지 35조5200억위안(약 6890조원)으로 늘게 된다.
란 부장은 이어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지방정부의 특별채권에서 매년 8000억위안(약 155조원)을 마련해 재원을 충당할 계획”이라며 “부채 한도 증액 방안에 이를 더하면 지방정부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 10조위안이 투입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책적 시너지가 발생할 경우 2028년 전까지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 총액이 14조3000억위안(약 2774조원)에서 2조3000억위안(약 446조원)으로 크게 줄어 부채 압력이 감경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채 문제가 해소되면 지방정부의 개발 추진력이 오르게돼 실물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중국 재정부는 향후 보다 강력한 재정 정책을 펼치겠다는 점도 언급했다. 란 부장은 “부채 한도와 특별채권 발행 규모를 적극 확대할 것”이라며 “국가의 주요 전략과 핵심 분야의 안보 역량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초장기 특별 국채도 계속 발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중국은 재정 정책에 앞서 지난 9월 말에는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내놨다. 당시 판궁성 중국인민은행장은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해 시장에 장기 유동성 1조위안(약 194조원)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지준율은 중국 은행이 예금 중 인민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현금 비중을 말한다. 지준율을 내리면 은행들이 시중에 더 많은 자금을 풀 수 있어 ‘유동성 공급 효과’를 볼 수 있다.
살아나는 中 제조업·소비심리
계속되는 부양책에 지난 10월부터는 관련 경기 지표들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보다 0.3포인트 상승한 50.1로 집계됐다. 이는 로이터통신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예상치(49.9)를 상회하는 수치로, 6개월 만에 ‘경기 확장’ 국면으로 돌아선 것이다. 기업 구매 담당자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PMI 통계는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이와 관련해 왕저 차이신인사이트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공급과 수요가 모두 확대됐다”며 “전반적인 시장 수요가 회복됐고, 생산은 꾸준히 증가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중국 제조업체에 발주된 신규 주문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중국물류구매연합회 전문가들을 인용해 “생산지수, 신규 주문지수, 구매량지수, 출고가격지수, 생산경영활동 기대지수 등이 모두 반등한 것은 제조업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지난 11월 15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0월 소매판매는 4조5396억위안(약 878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달인 지난 9월(3.2%)과 시장 전망치(3.8%)를 모두 상회하는 수치다. 소매판매는 백화점, 편의점 등 다양한 유형의 소매점 판매 수치로 내수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10월 산업생산도 1년 전보다 5.3% 증가했다.
소비가 살아난 데는 지난 10월 초 중국 국경절 연휴(10월 1~7일)의 영향이 컸다. 중국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국경절 연휴 기간 중국 국내 여행객은 7억6500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9%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과 비교해도 10.2% 늘었다. 또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솽스이’에 맞춰 지난 10월 중순부터 온·오프라인 매장들이 본격적인 할인 프로모션에 들어간 점 등도 소비를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도 경제 회복에 연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 11월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개막식 연설에서 “중국 정부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추진할 능력이 있다”며 “5% 경제 성장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정과 통화 정책에도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잇따른 경기 부양책을 발표해 소비 심리를 살리면 실질적인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경제가 계속되는 부양책에 지난 10월부터는 관련 경기 지표들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보다 0.3포인트 상승한 50.1로 집계됐다. <사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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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기관과 투자은행(IB)들도 최근 들어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1월 13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7%에서 4.9%로 올렸다. 내년도 전망치도 4.3%에서 4.7%로 조정했다. 이보다 앞서 세계은행도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을 4.5%에서 4.8%로 상향했다.
경제회복세 꺾일 수도
다만, 중국 경제 회복의 최대 변수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꼽히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고한 대(對) 중국 관세 인상이 현실화되면 중국 수출이 큰 타격을 받아 경제 회복세가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IB인 바클레이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 당국의 부양책 등으로 경기가 회복 조짐이 보이지만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의 에릭주 이코노미스트와 장수 아시아 수석이코노미스트도 경기부양책의 효과가 완전히 나타나려면 더 지켜봐야 한다며 “초기 회복세를 지속 가능한 반등으로 이어가는 것은 재정, 통화, 부동산 지원 등을 아우르는 조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행하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했다.중국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성공 이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월 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어떠한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선 공개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도 “미국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동시에 트럼프 2기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트럼프 1기 당시 주미 공사였던 리커신을 차관급인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부주임으로 발탁했다. 중국 외교의 사령탑인 왕이 외사판공실 주임을 보좌하기 위해 ‘미국통’으로 분류되는 리 부주임을 배치한 셈이다. 대중 ‘관세 폭탄’이 예상되는 트럼프 2기에 대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무역 갈등이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트럼프 2기를 상대할 핵심 인물에는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지목된다. 시 주석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허 부총리가 대미 경제·무역 전략을 총괄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장관)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는 전면에 나서 유럽연합(EU)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문제를 협상한 바 있다.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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