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라 베르사니가 대표작 '젠틀 유니콘'을 공연 중이다. 장애인의 신체를 상상의 동물 유니콘에 빗대 표현했다. 사진 모두예술극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탈리아의 공연예술가 키아라 베르사니(40)는 뼈가 약해지는 희소 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장애인이다. 키 98㎝의 작은 몸으로 안무를 만들고 공연을 연출할 뿐 아니라 직접 무대 위에 오른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 공연 예술계의 권위 있는 상인 '프레미오 우부'(Premio UBU) 35세 이하 최고 공연자 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주목 받았고, 2020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현대무용축제에 초청되며 주류 무용계에도 이름을 알렸다.
키아라 베르사니 '애니멀' 공연 사진. 발레 '빈사의 백조'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사진 모두예술극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발레 공연을 위해 내한한 베르사니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베르사니는 이곳에서 '젠틀 유니콘'(29~30일), '덤불'(12월 4일), '애니멀'(12월 6~7일)을 공연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그가 공연하는 건 지난해 홍콩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그는 취재진에게 "제 몸의 형태보다는 제 안무와 연출의 의미를 봐달라"고 당부했다.
"제가 처음 작품을 공개했을 때, 비평가들은 내 몸이 내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춤이 아닌, 몸을 먼저 봤죠. 장애인이 안무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춤에도 규칙과 훈련이 있죠. 다만 그 방식이 클래식 무용과 다를 뿐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젠틀 유니콘'은 신화 속 유니콘에 장애인을 빗댄 작품이다. 유니콘이 서구 사회에서 순수함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돼 온 점에 주목했다. 베르사니에 따르면 이 작품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나 정작 발언권은 없었던 유니콘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는 공연"이다.
키아라 베르사니(왼쪽에서 두 번째)가 28일 서울 모두예술극장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모두예술극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덤불'은 장애를 가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그는 "어린 시절 움직일 수 없어 한 곳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숲에서 장애 아동이 길을 잃었을 때,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탐구한 결과를 무대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애니멀'은 발레 거장 미하일 포킨이 안무한 솔로 발레 작품 '빈사의 백조'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베르사니의 깊은 목소리와 호흡, 느린 움직임을 통해 외로움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표현한다. 그의 몸짓은 발레 무용수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서 사실적이다. 도리어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죽어가는 동물을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
베르사니는 대학에서 연극 워크숍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행위 예술을 시작하게 됐다.
"저는 19세에 행위 예술을 처음 접했지만, 이 일이 제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례가 없었으니까요. 저는 바닥에서 제 몸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걸 깨닫고 행위 예술과 사랑에 빠졌어요. 그 전까지는 휠체어가 없는 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무대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정치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꼬리표를 부정하지 않았다. "장애인 전용 예술극장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공연해 장애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베르사니는 사회 활동가로서도 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조합을 결성해 장애 예술인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키아라 베르사니가 28일 서울 모두예술극장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 모두예술극장 |
"저와 제 동료들은 활동 반경을 넓히기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저는 장애인 여성이면서 동시에 예술가입니다. 그걸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 많은 장소에서 보여주는 것이 제 꿈이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맞을 준비가 안 돼 있는 곳에서도 공연해야 합니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니까요."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