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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잠 줄여서 4당5락? 7락8당입니다… 게임 아니면 침대 위 스마트폰 OK”[데스크가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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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세계적 수면학자 야나기사와 쓰쿠바대 교수

수면시간 짧은 한일, 세계적으로 특이… 공부 잘하는 우등생, 하루 7~8시간 자

야행성은 늦게 자고 일어나는 게 좋아… 자기 전 쇼츠 시청, 도파민 분비 해로워

집 조명은 어둡게… 자기 전 술 끊어야

동아일보

세계적 수면학자인 야나기사와 마사시 일본 쓰쿠바대 국제통합 수면의과학 연구기구(IIIS) 기구장(교수). 그는 한일 양국이 세계적으로 수면시간이 짧은 것에 대해 “잠자는 시간을 아껴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기 전 스마트폰을 금기시할 필요는 없지만 게임, 쇼츠 감상 등은 수면에 방해가 된다고 조언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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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불면(不眠) 대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28분으로 33개 회원국 중 최하위, 한국인(7시간 41분)은 뒤에서 2등이다. 한밤에도 조명 밑에서 골프를 치고 새벽에 음식 배달을 시켜 먹는 한국과 “24시간 싸울 수 있습니까”라는 자양강장제 광고로 잠들지 않는 샐러리맨을 칭송하던 일본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푹 잘 수만 있다면 고가의 매트리스를 구입하고, 비싼 건강식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들 역시 양국 모두 많다.》

숙면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밤잠을 아껴 가며 공부하고 일을 해야 성실하다고 인정받는 ‘근면 신화’도 굳건하다. 잠은 왜 중요할까. 어떻게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수면 학자인 야나기사와 마사시(柳沢正史) 일본 쓰쿠바대 국제통합 수면의과학 연구기구(IIIS) 기구장(교수)을 12일 이바라키현 쓰쿠바대 캠퍼스에서 만나 잠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수면시간이 짧은 나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도 특이하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는 이렇지 않다. 일본도 1960년만 해도 지금보다 1시간 이상 오래 잤다.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잔 것이다. 이후 고도 경제 성장이 본격화되면서 수면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24시간 영업하는 가게도, 밤에 활동하는 젊은이도 많아졌다. 한국도 비슷하지 않나.”

―한일 모두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낙방한다)’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반대다. 7락8당(7시간 자면 떨어지고 8시간 자면 붙는다)이다. 제대로 안 자면 안 된다. 두 나라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다. 잠자는 시간을 아껴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고교 학생 때 그런 환경을 접하니 평생 그런 생각을 갖고 산다.”

―한국에서는 ‘잘 거 다 자면 언제 성공하나’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지 않겠나. 일본도 비슷하다. 고등학생들 보면 다들 졸려 한다. 공부 효율이 떨어지고,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야나기사와 교수는 “일본인과 서양인은 수면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인은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 사귀고, 학원 다니고, 취미 생활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니 ‘아까운’ 수면시간을 헐어 열심히 살고, 남는 시간에 잠을 잔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7시간이든 8시간이든 수면시간을 먼저 확보하고, 남는 16∼17시간을 쪼개 생활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밤샘하며 공부하고 일하면 능률이 오를까.

“절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전국 1등으로 꼽히는 명문고 학생 50명 정도가 연구실 견학을 왔다. 나는 고교생을 만나면 몇 시간 자는지 물어본다. 보통 일본 수험생은 6시간 이하가 대부분이고, 5시간 이하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이 학교 학생들은 다들 7, 8시간씩 잔다고 했다. 우등생들은 잠을 안 자고 공부하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걸 안다.”

―얼마나 자야 충분한가.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20대 젊은이라면 8시간도 부족하다. 60세가 넘으면 7시간 미만도 괜찮다. 또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다. 자신에게 충분한 수면시간을 알고 싶다면, 최소한 4일 연속 아무 방해도 받지 말고 잘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오래 자 봐라. 첫날은 대부분 많이 자는데, 이틀째 이후에는 첫날만큼 오래 자지 않는다. 사흘째 이후에는 더 짧아진다. 그렇게 해서 몸이 편해지는 수면시간이 자신의 필요 수면량이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 게 좋은가.

“오후 11∼12시에 잠들고 오전 7시 정도에 깨는 게 표준이지만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야행성이라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더 좋다. 자신에게 맞는 수면량이 얼마나 되는지, 자신이 아침형 인간인지 올빼미형인지 살펴보고 자신의 일정 등을 고려해서 정하면 된다.”

―나이가 들면서 깊게 잠들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다.

“정상이다. 수면의 노화 현상이다. 20대라면 깊게 푹 잘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얕게 자고, 중간에 깨서 화장실 가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잠을 깊이 못 잔다. 체력이 떨어지듯 수면의 질도 나이가 들수록 떨어진다.”

―낮잠을 자는 건 건강에 좋은가.

“영어로 파워 냅(power nap)이라고 하는데, 방법이 있다. 늦어도 오후 2시 전에, 점심 식사 후 15∼2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건 좋다. 30분 이상 낮잠을 자면 깊은 수면에 빠지니 일어나기 어렵고 깨어나면 머리가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중요한 건 낮잠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일 뿐이란 점이다. 이상적으로는 밤에 충분히 잠을 자면 낮에 졸리지 않으니, 낮잠이 필요 없다.”

―업무 특성상 교대근무로 취침 시간이 매일 바뀌는 직장인도 많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건강하게 수면을 취하는 건 정말 어렵다. 생물학적으로 생체 리듬에 어긋나는 생활이다. 솔직히 뭐라고 하기 참 어렵다. 다만 현실적으로 교대근무를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잘 수 있을 때 자 두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수면 부족이 되지 않도록 졸릴 때 참지 말고 자야 한다.”

현대인들이 잠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스마트폰이다. 자기 전 잠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콘텐츠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제대로 잠들어 보겠다고 스마트폰을 끄거나 침실 밖에 두기도 하지만, 버릇돼 다시 스마트폰을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만지작대는 경우도 많다.

―스마트폰은 ‘수면의 적’인 것 같다.

“어떤 전문가는 절대 침실에 스마트폰을 두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뭘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가장 안 좋은 건 게임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도 좋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쇼츠(짧은 동영상)는 계속 보면 뇌 속의 도파민이 분비돼 뇌의 흥분 상태가 지속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면 뭘 보면 좋은가.

“너무 짧지 않고 느긋하게 지속되는 동영상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는 분이 꽤 많다. 나는 지루한 논문을 스마트폰 파일로 읽다 보면 금방 졸음이 쏟아진다. 또 장기 해설 프로그램을 보는 게 취미인데, 장기 한 수 한 수를 해설해 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보면 졸린다. 그런 식으로 졸음을 유발하는 뭔가를 찾아 취침 루틴으로 만들어 봐라. 의지가 약해 게임, 채팅, 쇼츠 감상밖에 못 하겠다면 스마트폰을 스스로 금지하길 권한다.”

―스마트폰의 밝은 빛도 수면에 안 좋지 않나.

“블루라이트(푸른 빛)가 멜라토닌 호르몬을 억제해 각성 작용을 일으켜 좋지 않다고 한다. 다만 요즘 스마트폰은 블루라이트 자동 차단 기능이 있어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집 조명이다. 일본 주택은 거실에 하얀 조명을 너무 밝게 켜 놓는다. 수면에는 스마트폰보다 천장 조명이 더 해롭다.”

―그렇다면 집을 어둡게 해도 되나.


“침실은 기본적으로 어두워야 한다. 어두우면 불안하다는 분도 계시는데, 그러면 발밑을 비추는 약한 부분 조명을 쓰고, 암막 커튼을 적절히 사용하면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적어도 오후 7∼8시부터는 어둡게 하고, 흰 조명보다는 노란 조명이 좋다. 일본인은 태평양전쟁 때 겪은 등화관제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싶다. 또 어두우면 가난하고 불쌍하고, 밝으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서양에선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숫자로는 100럭스 미만, 어두운 밤길 가로등 아래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일본 주택 건축 조도 지침은 500럭스다. 너무 밝다.”(한국은 거실에 300∼400럭스 안팎의 조명을 권유하는 업체가 많다.)

―한국에서는 침구 등 비싼 수면 제품이 인기를 끈다.

“가격과 상관없이 자기 취향에 맞는 제품을 쓰면 된다. 특정 베개를 쓰면 과학적으로 잠을 깊이 잘 수 있다고 홍보하는 제품이 많은데, 광고에 불과하다. 수면 기술이라는 말에 너무 현혹되지 말라.”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를 먹고 자는 사람도 많은데….

“신뢰할 만한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건 안전하다. 습관이 되기 쉬운 약도 있는데, 의사와 상의해 적절한 시기에 졸업한다는 생각으로 복용하면 된다. 너무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대로 복용량을 늘리거나 임의로 끊는 건 좋지 않다. 다만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피하는 게 좋다. 술에 취해 잠들 순 있지만, 수면의 질이 매우 나빠진다. 술을 마셔야 잠이 든다면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는 게 좋다.”

야나기사와 마사시 교수

1960년 도쿄 출신. 국립 쓰쿠바대 의학박사. 미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의료센터 교수를 거쳐 세계 최대 수면 연구소로 꼽히는 ‘쓰쿠바대 국제통합 수면의과학 연구기구(IIIS)’를 이끌고 있다. 수면과 잠이 깨는 걸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 ‘오렉신(orexin)’을 발견했다. 수면 관련 유전자 및 불면증 연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2023년 생명과학 브레이크스루상 등을 수상했고 유력한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도 꼽힌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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