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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깜짝 인하’에 다시 커진 환율 불안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값은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전 거래일 보다 0.8원 오른(환율은 하락) 1394.8원에 거래를 마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커진 달러 강세에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줄 곧 하락세를 탔다. 특히 지난 12일에는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달러 대비 원화 값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1400원대(1403.5원)를 넘어 섰었다. 이후 지속된 달러 가치 상승 피로감에 원화 값 하락세는 다소 주춤해졌지만, 원·달러 환율은 줄곧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대에 근접한 1390원 후반대를 유지했다.
2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등 국내 증시 종가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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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우려를 다시 키운 것은 한은의 깜짝 금리 인하다. 28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회의를 가지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예상 밖 2회 연속(백투백) 인하에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도 1.5%포인트에서 1.75%포인트로 다시 벌어졌다. 한국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을 수록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지면서, 달러 대비 원화 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한은의 금리 인하 직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일단 약보합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는 지금부터가 시작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외 환경이 달러 강세를 여전히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좁혀지던 금리 격차까지 다시 커질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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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전쟁·트럼프 리스크에 달러 쏠림 심화
실제 최근 불안한 대외 경제 환경은 달러 강세를 더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 60일 동안의 임시 휴전에 일단 합의했지만,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이 이어지는 등 불안한 휴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히려 격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승인 아래 미국의 전술 탄도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자, 러시아도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응수했다고 밝히면서다. 러시아는 공공연히 핵 공격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전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전쟁 우려가 커지면 상대적 안전 자산인 달러로 투자금이 쏠린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식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도 본격적으로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내년 1월 20일,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 공언대로 관세 부과가 이뤄져 ‘관세 전쟁’이 터지면,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달러 값 상승을 더 부추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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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원화 값 하락 용인 시그널 줬다” 지적도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내수 부진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까지 나서자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 의지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더 커졌다. 실제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그간 금리를 결정할 때 환율을 고려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28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원화 절하 속도가 다른 화폐 절하 속도보다 크게 나빠진 것 아니다”며 사실상 최근의 강달러 기조를 용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정근영 디자이너 |
실제 한국과 미국의 향후 금리 경로도 반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최근 공개된 1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은 “점진적 인하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현재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보다 천천히 가져가겠다는 의사로 풀이된다. 반면 28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 직후 이 총재는 “금통위원 절반이 3개월 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했다. 만약 다음 달에 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는데, 이후 한은이 금리 인하에 또 나선다면, 현재 1.75%포인트인 양국의 기준금리 차이가 다시 2% 이상까지 확대할 수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결정으로 인해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외환 당국이 다소 높은 환율 레벨(원화 값 하락)도 용인할 의사가 있다는 시그널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국내 증시가 글로벌 위험 선호 분위기에서 소외되는 가운데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지속하는 점도 환율 상승(원화 값 하락)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짚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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