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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별 3개 다 잃고 다시 시작… 인생과 자존심 걸고 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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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성윤 기자의 공복]

‘흑백요리사’ 최고의 스타

모수 오너 셰프 안성재

조선일보

미쉐린 3스타 셰프 안성재는 “요리사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고 외식 업계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싶어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는데 기대 이상이라 보람을 느낀다”며 “모수는 내년 초에 재개장한다”고 했다. 안성재 셰프 사진과 미쉐린 스타 로고를 합성했다./고운호 기자, 그래픽=송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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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지난 3일 서울시와 마련한 미식 행사는 예약창이 열리자마자 45만명이 동시 접속했다. 10초 만에 티켓이 마감됐다. 안성재(42)는 넷플릭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다. 외식 사업가 백종원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나선 그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미쉐린 3스타 셰프. 맛이 아니라 요리사의 기본기와 음식의 맥락을 날카롭고 엄격하게 평가해 대중을 사로잡았다.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채소의 익힘 정도거든요” “간이 타이트하게 들어갔어요” “완성도가 없는 테크닉은 테크닉이 아니에요”…. 안성재의 심사평은 어록으로 만들어졌다. 심사 장면은 수많은 패러디와 밈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 나갔다. 어린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아 “뽀로로 다음으로 초통령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시 미식 행사장에서 만난 안성재는 “원래 주방에서 하던 대로 말하고 행동했을 뿐, 연출하거나 의도한 게 아닌데 화제가 되고 좋아해 주셔서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외식 업계에 도움이 되고 싶어 출연했어요. 유명 요리사들도 ‘식당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할 만큼 장사가 안됐었는데, ‘흑백요리사’ 이후 연락하면 다들 ‘바쁘다’고 해요. 그 프로그램으로 업계를 살린 것 같아 행복하고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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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돌아이' 윤남노 셰프가 자신이 만든 요리의 의도를 안성재 셰프에게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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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해주셔서 당황스러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흑수저(은둔 고수)·백수저(유명 요리사)들은 평가와 결과를 깨끗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남이 잘되면 배아파하고 깎아내리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멋진 풍경. 그 중심에 안성재가 있었다.

-인기를 실감하나요.

“길에서 너무 많이 알아보셔서 민망할 정도예요.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오래 함께 일한 레스토랑 직원들은 ‘셰프님 원래 말투이고 음식을 대할 때 자세라 자연스러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음식과 직원과 손님을 대할 때 최대한 전문적이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모습이 대중에게는 신선하고 긍정적으로 비친 것 같습니다.”

-가장 황당했던 해프닝은 뭔가요.

“아이들 다니는 초등학교 운동회에 응원하러 갔는데,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저를 너무 반겨가지고(웃음). 달리기 시합에 나선 아이들이 저를 쳐다보느라 앞이 아니라 옆으로 뛰더라고요. 6학년 친구들이 ‘셰프님과 찍은 사진을 졸업 앨범에 넣고 싶다’고 부탁해 교실에 들어가니 소리 지르고 난리였어요.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왔고 감격해 우는 여자아이도 있었고.”

-중년 아저씨가 아이돌 대접을 받았네요.

“아이들이 ‘셰프가 되고 싶어요’ ‘셰프 멋있어요’ 하더라고요. 방송 출연으로 요리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것이니 뿌듯했어요.”

-어른들은 별 반응이 없나요?

“안 셰프를 보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세를 돌아보고 가다듬게 됐다는 말을 전문직 종사자들께 많이 들었어요.”

-다른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는 볼 수가 없는데.

“솔직히 섭외란 섭외는 다 왔습니다. 떳떳하고 자신 있게 요리사라고 말할 길이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조심스럽게 가고 있어요. 건방지다느니 똥고집이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겠죠. 하지만 저 개인과 레스토랑 ‘모수(MOSU)’의 방향성과 핵심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의 길을 가지는 않겠네요.

“케이블 채널 요리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웃음거리가 되는 게 싫었어요. 몇 번 나가다 접었고 이후로는 방송은 하지 않았어요. 요즘에는 모수 영업 재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수 레스토랑은 CJ 투자를 받아 2017년 서울 한남동에 개점했지만, 계약이 끝나며 올 초 문을 닫았다. 안 셰프는 “고마운 파트너였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제 선택으로 나왔다”며 “대기업이 아닌 새로운 파트너와 새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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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경연 참가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안성재 셰프가 맛보고 있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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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에게 ‘(영국 요리사) 고든 램지처럼 화내고 욕하고 집어 던지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출연했다면서요.

“많은 요리사가 인생과 자존심을 걸고 요리합니다.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캐릭터 설정이나 연출이 정말 없었나요?

“전혀요. ‘부자연스럽지 않게 평소 하던 대로 해달라’가 유일한 주문이었어요.”

-백종원 대표와 갈등은 없었나요.

“사실 의견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괜히 둘이 했나’ 걱정했을 정도로요. 백 대표님도 그랬을 거예요. 처음 만났는데 제 기(氣)를 누르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웃음). 음식에 대한 지식으로는 누구한테 뒤지지 않아서. 초반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았어요. 대화를 굉장히 많이 나눴고 조율하면서 풀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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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심사위원으로 나선 안성재 셰프(오른쪽)와 외식사업가 백종원.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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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100명의 음식 중 뭐가 제일 맛있었나요?

“급식 대가님요. 셰프가 어떤 성품과 성향을 가졌느냐가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데, 음식 만드는 모습에서 너무 많은 사랑이 전해졌어요. 따뜻한 음식을 만든다는 느낌. 뭘 만드실까 궁금했는데, 정말로 아이들에게 먹이는 급식을 만드신 거예요. 맛을 보니 ‘이분 음식은 계속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라운드에서 오골계로 닭볶음탕을 하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다른 요리사들도 기술적 완성도가 높고 맛있게 잘 조리했지만, 나중에 먹고 싶은 건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급식 대가님의 음식이었어요.”

-흑백요리사 시즌2에도 출연하나요.

“감사하게도 제안을 받았지만 모수 오프닝과 겹쳐서 시간을 조율해야 해요. 아직 사인한 건 아니라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고요.”

◇정비사 꿈꾸다 요리사로

서울에서 태어난 안성재는 열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가 자랐다. 하교하면 부모가 운영하던 옷 가게나 중식당에서 일을 도왔다. 미 육군에 입대해 정비병으로 이라크에 파병되기도 했다. 제대 후 포르셰 정비사가 되려고 차량 정비 학교에 등록했지만, 새하얀 조리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흥미가 생겨 요리 학교를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입학을 결정했다. 스물네 살 때였다.

-인생의 항로가 급회전했네요.

“요리 학교는 비싼 수업비를 낼 학생들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니까 완전 멋있게 포장해 놨더라고요. 혹한 거죠. 요리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어쨌든 시작했으니 최대한 열심히 해야 했고요.”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인근 식당에 일자리를 구했나요.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최대한 빨리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굴을 까고 서빙하고 설거지도 하고.”

-요리가 재밌던가요?

“처음에는 너무 재밌었죠. 불과 물을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매력적이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왔지만 ‘이젠 이 일 말고 다른 선택은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요리 학교 등록하느라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빨리 요리사가 돼 돈 벌어야겠다는 현실적인 원동력이 됐죠, 하하.”

그는 LA에서 가장 비싼 식당에서 일해 보겠다며 베벌리힐스에 있던 스시집 ‘우라사와’에서 무보수로 일했다. 미국 최고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제대로 된 방 구할 돈이 없어서 내파밸리 포도밭 한가운데 오두막에서도 살았다고요?

“사람들이 ‘너 되게 특이하다, 미친 놈 아니냐’는 말을 많이 했어요. 돈이 없었지만 돈 버는 길로만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밥도 못 먹고 맨날 같은 옷 입고 거지꼴로 다녀도 저한테는 아무 문제가 안 됐어요. ‘좋아하는 요리 하면서 언젠가 나도 셰프로서 멋지게 뭔가를 할 수 있겠지’라는 이상주의가 강했지요. 돌아보면 바보같이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셰프라는 직업을 왜 그렇게 좋아하나요.

“프렌치 론드리에서 함께 일한 레스토랑 ‘베누(Benu)’의 오너 셰프 코리 리(이동민)가 ‘프랑스의 위대한 요리사들(Great Chefs of France)’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줬어요. 요리밖에 모르는 그들의 신념이나 삶이 멋있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언제나 어려운 선택을 했고, 어쩌면 그래서 이 일이 가치 있는 것 같아요. 셰프로서 음식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식당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나를 따라주는 팀원들과 쿵짝쿵짝 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베누는 샌프란시스코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했다. 이후 안 셰프는 ‘아지자’라는 모로코 레스토랑 총괄 셰프를 맡아 미쉐린 1스타를 받았고, 2015년 본인의 레스토랑 ‘모수’를 샌프란시스코에 열었다. 모수도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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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 대표 메뉴 ‘전복 타코’.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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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기보다 힘들어도 도전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

“그런 성향이 있어요. 그냥 쉬면 불편해요.”

-모수 주방은 엄격하기로 유명한데.

“팀원들이 저한테 함부로 말도 못 걸죠. 엄청나게 디맨딩(부담이 크고 힘든)하고 요리사들이 견뎌야 하는 프레셔(압박)가 커요. 성실하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일하기도 말 걸기도 싫어요. 쌍욕하면서 나간 애들도 있고요.”

-요즘 그렇게 해도 괜찮은가요.

“부모에게 항의 전화를 받은 적은 몇 번 있어요. ‘딸이 집에 와서 울고 있다’는. 저도 부모라면 그럴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저희 주방은 늘 텐션(긴장감)과 프레셔가 굉장하고 요구하는 기준이 높다. 자녀분은 더 밝고 쉬운 곳에서 일하기를 권장한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스타일이어서 고소당한 적은 없지만 뒤에서 칼빵 맞을까 봐 무섭기는 해요(웃음).”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면.

“인내심이죠. 성실한 사람만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내심이 있어야 대충 하자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어요.”

-완벽한 음식이란 어떤 건가요.

“마음이 담겨야죠. 허름하고 값싼 백반집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았다면 궁극의 음식이에요. 엄마, 할머니의 음식과 손맛을 셰프들이 자주 언급하는 이유예요. 모수도 그런 마음으로 하자고 강조해요.”

-모수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이 무용 수업을 받는다면서요?

“프렌치 론드리에서 일할 때 ‘주말에 한잔하자’ 했더니 ‘발레 레슨 가야 된다’고 해요. 오너 셰프가 배우기를 권하면서 수강료를 지원해준다는 거예요. 그들의 움직임에서 다른 점이 보였습니다. 손목을 꺾거나 팔을 뻗는 동작이 무용수처럼 부드럽고 우아했어요. 접시를 그냥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어요. 모수 직원들에게 강요한 적은 없고요. ‘발레 수업 들으면 서포트(지원) 해줄게’라고 권장합니다. 안 들으면 저야 돈 굳는 거죠(웃음).”

◇별 따려고 요리하진 않는다

안 셰프는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2017년 모수를 서울로 이전했다. 미쉐린 1스타와 2스타를 차례로 획득하고 2023년 마침내 3스타를 따냈다. CJ와의 파트너십 종료로 올해 초 휴업한 뒤 준비하던 재개장은 내년 2월로 늦춰졌다.

-별을 받고 망한다는 ‘미쉐린의 저주’가 내린 걸까요.

“미쉐린의 저주는 잘못된 말이고, 한국 시장의 특성 때문이에요. 미국은 2스타에서 3스타가 되면 가격이 얼마로 오르는 공식 같은 게 있어요. 2스타와 3스타는 식재료 등 소프트웨어와 인테리어 등 하드웨어에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3스타로 승급했다고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시장은 아니잖아요. 파인 다이닝 시장이 형성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더 대중적인 식당을 열 계획은 없나요.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명해졌다고 대충 파는 식당을 내기는 싫고요, 저희만의 철학과 방향성이 있는 대중식당을 하고 싶어요. 셰프는 구했고 메뉴와 자리를 고민하고 있어요. 연말에 오픈하기를 희망하지만 예상보다 늘 더 걸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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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재 셰프가 2023년판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고 동료 요리사들에게 축하 받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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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수를 다시 열어도 1년을 쉬었으니 미쉐린 가이드에서 빠질 수 있겠네요.

“빠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빠져요. 미쉐린은 평가원들이 잠행해 확인하는 게 원칙인데, 영업을 못 했으니까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에서도 빠집니다. 사실 서두르면 강남에서 9월에 재개장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양으로 자랑스럽게 손님을 맞으려니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내년 2월까지 미뤄질 줄은 몰랐지만 3스타를 잃더라도 더 진화된 모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죠.”

-다시 미쉐린 스타에 도전하나요.

“처음부터 별을 받으려고 모수를 연 건 아니었어요. 셰프의 라이프스타일을 좋아해서 버틸 수 있었죠. 모수에 일하러 간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3스타까지 딴 거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게 목표는 아니었어요. 지금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모수에서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메뉴는 디저트로 내는 약과인데.

“궁중 음식 전수자께 할머니가 배우셨대요. 이북 분이셔서 개성약과, 냉면도 많이 만들어주셨어요. 명절이면 약과를 만들어 파셨는데, 집 안이 온통 생강과 기름 냄새로 가득했죠. 그땐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저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할머니 레시피를 재해석해서 저만의 약과를 만들어나갈 겁니다.”

-집에서 가족에게도 음식을 해주나요.

“평소 식사는 아내가 준비해요.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애들이 ‘아빠, 달걀 오믈렛 해줘’ 식으로 주문하면 제가 해주고요. 스테이크 구울 때는 애들이 알죠, 아빠가 구우면 훨씬 맛있다는 걸(웃음). 와이프가 ‘냉장고에 뭐가 많다’고 하면 냉털(냉장고 털이)을 해 이런저런 음식을 만듭니다. 3스타 셰프도 집에서 라면 끓여 먹는 거 좋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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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복싱대회에서 우승해 트로피를 들고있는 안성재 셰프(가운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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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마추어 복싱 대회 나가서 우승하기도 했지요?

“어려서 레슬링을 했고, 군대 가서도 덩치 큰 동료들과 운동하면서 어울렸어요. 레스토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배출할 곳이 필요해 격투기 도장을 찾았는데 재밌더라고요. 바보 같지만 ‘세계 챔피언이 될 거야’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어요. 제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 식당 세 곳을 추천한다면.

“강민구 셰프가 운영하는 ‘밍글스’가 일단 생각나네요. 제가 사는 동네 식당을 주로 다니는데 ‘만두전빵’이라는 만두집은 줄이 길어서 일찍 가서 만두전골을 먹어요. 행당시장 안 ‘왕십리오리사냥’도 자주 갑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할머니 음식은 못 먹을 테니 스시를 택할게요. 좋은 스시 먹으면 요리사의 정성이 입에서 느껴져요. 저도 스시를 했기 때문에 누가 잘 만들고 누가 대충 만드는지 다 보이죠.”

-어떻게 알아요?

“서 있는 자세, 각만 보면 나와요. 재료 정리해놓은 것만 보면 알고. 칼 놓는 방향만 봐도 알고. 맛 이전에 태도에서 승부가 나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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