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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트럼프 관세 피하려 美원유 수입 늘리면…“중동 원전수주 위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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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9일(현지시각) 미 텍사스 브라운스빌에서 스페이스X 화성 탐사선 스타십 로켓의 시험 발사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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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간 400억 달러 넘는 대(對)미국 무역수지 흑자 줄이기에 나섰다. 내년 1월 미국에서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자국 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미 무역흑자가 큰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 장벽’을 세우겠다고 예고해서다.

29일 산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으로 수출 기조는 이어가되 수입을 늘리는 방향으로 무역수지(수출액과 수입액의 차이) 흑자를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미 수입을 늘리는 방법은 제3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량 가운데 일부를 대체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럼 결과적으로 한국의 전체 수출과 수입, 무역수지에 큰 변화를 막고 트럼프 차기 미 정부의 요구도 충족하는 ‘윈윈’(win-win)을 할 수 있어서다.

제3국으로부터 수입을 줄이고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늘릴 만한 품목으로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거론된다. 원유의 경우 수입 지역이 지정학적 긴장도가 높은 중동에 편중돼 있는데,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돌리면 원유 수급 안정성을 높이는 이점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원유 수입량 가운데 중동산 비중은 70.9%에 달한다.

중동산 원유 대신 미국산을 수입해오면 더 싸게 들여올 가능성도 있다. 지난 26일 종가 기준으로 중동산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는 배럴당 72.50달러인데, 미국산 원유 기준인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68.77달러/배럴로 4달러 가까이 낮다. 중동산에 관세(3%)가 붙고 미국산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가 안 붙는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미국산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트럼프 차기 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원유 생산 확대를 예고한 점을 고려하면 미국산 가격은 더 내려갈 수 있다. 또한 황 성분이 많은 중질유 위주의 중동산과 비교해 황 성분이 적은 경질유 위주의 미국산은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산업부는 중동산 원유 일부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2년부터 운영 중인 ‘원유 도입처 다변화 지원 제도’를 활용할지 검토 중이다. 현재 운송비가 높은 미국산(배럴당 4달러가량) 등을 수입할 경우 운송비가 낮은 중동산(배럴당 약 2달러)과의 차액 일부를 보전해주고 있는데, 이 지원금액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총 지원금액은 연간 2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산업부는 위험요소도 있는 것으로 보고 고심 중이다. 무엇보다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살 수 있어서다. 이미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도입처 다변화 지원 제도 자체에 대해 “사실상 부당한 보조금 지원”이라며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산 대체를 위한 정부 지원이 커질 경우 자칫 중동으로 원자력발전소 등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수 국가가 중동산 원유 일부를 미국산으로 대체하면서 중동 국가들의 돈줄이 마르고 그에 따라 원전 발주량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정유사 중 에쓰오일의 경우 최대주주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인데, 이 때문에 더욱 미국산으로 대체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중동의 반발을 극복하더라도 또 다른 리스크가 있다. 차기 트럼프 미국 정부는 ‘즉각적인’ 대미 무역흑자(미국 입장에선 무역적자) 축소를 원하는데,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 카드로는 그 속도에 맞추기가 어려울 수 있다(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는 점이다. 보통 원유 수입은 장기 계약을 중심(60%가량)으로 하기 때문에 수입 지역을 변경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또한 아직 미국의 원유 수출 터미널 용량이 협소해 한국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수입을 늘리기가 물리적으로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한국은 미국에 ‘(앞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협력을 요청한) 조선업이나 방위산업 등 분야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보편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구하는 전략이 미국산 원유 등 수입 확대 카드를 쓰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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