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으로의 귀환은 2019년 이래로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북미정상회담 재개 여부로 쏠린다. 이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달리 2기 트럼프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비중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중재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해왔다. 또 1기 트럼프 때에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조선은 '경제 제재 해결'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북미 협상의 목표가 흐릿해진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김정은 정권이 크게 달라졌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들을 들면서 북미정상회담의 재개 가능성을 낮게 본다.
필자 역시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열릴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의 예측은 2025년에는 '중간' 정도이고, 2026년에는 '높음'이다. 물론 '하노이 노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회담이 합의를 보장하진 않는다. 합의를 하더라도 이행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판문점 '번개팅'에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실무회담 재개를 약속했지만 한미가 연합훈련을 강행하면서 안 하니만 못한 약속이 되기도 했었다. 이에 따라 '시즌 2'의 핵심적인 관건은 북미 접촉과 실무회담에서 '상호 만족할 수 있고 이행 가능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느냐에 있다. 북미 예비회담의 성패가 정상회담의 재개 여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예측 못지않게 중요한 것도 있다. '한국이 북미정상회담 재개·합의·이행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질문을 세부화해보면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비핵화가 뒷전으로 밀리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의 지위가 강해지면?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의 악화가 맞물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을 배제하고 북미 평화협정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북미간의 합의가 주한미군의 철수나 대폭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면?
아마도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극우·보수 진영은 이를 의식해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중도·진보 진영의 딜레마도 커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 지난 2018년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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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할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이러했었다. 김정은은 2018년 3월에 방북한 문재인 정부 특사단에게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며 한국이 미국에 이런 입장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의용 당시 안보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했다. 하지만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 있었다. 북미정상회담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트럼프였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북미간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7년 말에 조선은 유엔 사무차장인 제프 펠트만의 방북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백악관을 방문한 안토니오 구테후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제프 펠트만은 평양에 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김정은과 만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달해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를 전달받은 펠트만은 평양에서 리용호 외무상을 만나 트럼프의 비밀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놀란 리용호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펠트만은 "나를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유엔 관리로서의 역할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은 펠트만이 2021년 2월 21일자 영국의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트럼프의 비밀 제안이 김정은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의 최초 제안자는 트럼프였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기실 트럼프는 정계 입문을 타진하기 시작한 2010년대 초반부터 북미정상회담에 일관된 소신을 가져왔다. 2016년 대선 후보 당시에도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었다. 이를 두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측에서 '친북주의자'로 몰아붙여도 트럼프는 소신을 꺾지 않았었다.
그의 소신은 2024년 대선 유세 때에도 이어졌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으로 전쟁 위기를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7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며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제 북한은 다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며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는 그들과 잘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문을 열 하나의 열쇠를 쥔 트럼프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나온 언론 보도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11월 27일자 <로이터> 통신이 트럼프 인수팀의 사정에 밝힌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직접적인 대화를 추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직접 대화의 1차적인 목표는 "무력 충돌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다. 다만 "추후의 정책 목표나 정확한 시간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에서 주목할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트럼프의 인수팀이 북미대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미대화가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둘째는 2기 트럼프 대북정책의 초기 목표가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한 긴장완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의 수용성을 높여 북미대화 재개의 촉진 요인이 될 수 있다.
셋째는 2기 트럼프 4년간 추구할 대북정책의 목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기 때처럼 비핵화를 목표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북핵 동결을 포함한 군비통제로 잡을 것인지를 놓고 좌고우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트럼프는 임기 첫해부터 북미회담을 향한 수준을 밟으면서 정상회담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듯 트럼프는 11월 22일 1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 부대표를 지낸 알렉스 웡을 백악관 국가안보수석부보좌관으로 지명했다. 트럼프는 그의 발탁 배경으로 "대북정책 특별 부대표로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의 정상회담 협상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물론 상반된 예측도 가능하다. 가장 큰 근거는 대북정책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와는 달리 2기에서는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에 있다. 트럼프가 "24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장담해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가 단연 우선순위이다. 이를 반영하듯 트럼프는 당선 직후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연이어 통화해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했다.
중대 기로에 서 있는 중동 분쟁의 향방과 트럼프의 개입 의지도 큰 변수이다. 트럼프가 힘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해왔고 미국 내에서 초당적인 합의 흐름이 강한 중국과의 전략경쟁은 가장 큰 전략적 변수에 해당된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2017년 1월 트럼프의 취임 즈음에 북핵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상한 것과 오늘날의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듯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트럼프의 소신과 우선순위에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중 전략경쟁 등 다른 대외정책 사이에 엇박자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 사안과 대북정책은 '연결된 문제'이다. 이는 트럼프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한 마이클 왈츠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6월 20일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선적을 차단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11월 24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조선의 파병이 확전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가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2023년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난 김정은이 대만 해협 분쟁을 기회로 보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그것은 세계에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복병으로 떠오른 조선의 대러 무기 지원과 파병 문제도 시야에 넣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왈츠는 의원 시절에는 선박 차단과 제제 강화 등 강경 대응을 주문했었다. 그런데 이는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트럼프의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러-우 전쟁이 계속되면 김정은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대북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조선의 대러 군사지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다. 이 방법이 조선과의 소통 채널이 완전히 막혀 속절없이 우려만 표명한 바이든 행정부와 확실한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고, 러-우 전쟁 종식 및 북미관계 개선에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북미관계 개선이 대만 문제 등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미국 내에서 초당적으로 나오고 있는 전략적 걱정인 '중국-러시아-조선-이란 연대'를 막을 수 있다고도 여길 수 있다.
트럼프의 대북 접근에 제약 요건들은 또 있다. 과거와 현재, 한국과 조선의 엇갈림이 대표적이다. 1기 트럼프 때에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정상회담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섰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기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는 반대로 북미회담을 견제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또 과거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 정상회담에 임했던 김정은 정권은 대미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2019년이 지나면서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새로운 길"을 걸어왔다. 조선의 전략에 있어서 북미관계의 비중이 과거보다 훨씬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트럼프의 대북 접근과 관련해 윤석열의 견제와 김정은은의 무시가 맞물리면 북미회담은 겉돌 수밖에 없다. 후술하겠지만, 더 큰 변수는 김정은의 호응 여부이다.
'시즌 1'과 비교할 때, '시즌 2'의 양상은 크게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한국에선 행위자 자체가 바뀌었고 조선에선 행위자의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시즌 1에선 남북미 모두 한반도 비핵화 추구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동상이몽이 너무나도 커졌다. 이에 따라 더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가 대북정책의 목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매우 중요해졌다.
시즌 1과 마찬가지로 비핵화에 목표를 두면 북미회담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반도 긴장완화와 더불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한 등 북핵 동결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 내내 비핵화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해온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군비통제가 북미관계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크 폼페이오의 진단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트럼프 1기 초기에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았다가 북미정상회담 추진이 본격화된 2018년 4월부터는 미국 외교의 사령탑인 국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북미회담의 실무총괄을 맡았었다.
그는 2023년 1월 출간한 <The Never Give an Inch : Fighting for the America I Love(한 치도 양보하지 말라: 내가 사랑하는 미국을 위해 싸우다)>에서 2018년 6월 김정은과 트럼프의 첫 만남 이후 조선의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가 트럼프의 임기 동안에는 없었다며, "이는 꽤나 좋은 결과였다"고 썼다. 비핵화라는 "완전한 성과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이 환영할 수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폼페이오가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없어졌지만, 그의 이러한 평가는 트럼피즘의 핵심인 '미국 우선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트럼프의 야심이 노벨평화상 수상에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통령 재임 때에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전쟁, 더 나아가 세계 3차 대전을 막았다며 노벨상 수상 자격이 있다고 강변한 바 있다.
대선 직전인 10월 11일 디트로이트 대선 유세에서도 "내가 노벨상을 원한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버락 오바마도 2009년에 노벨상을 받았는데, "왜 나는 받지 못했냐"며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러한 질투심이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대외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이다. 3선에 도전할 수 없는 그로서는 노벨상 수상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업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미정상회담 자체로 트럼프의 노벨상 수상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큰 관건은 그가 공언해온 러-우 전쟁의 종식 여부에 있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가 한국전쟁 종식에도 다시 관심을 가질지 여부도 중요하다. 그는 1차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며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은 "축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른바 "어른들"을 배제하고 '충성파'로 진용을 갖추고 있는 트럼프가 이 문제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러-우 전쟁 종식과 더불어 70년을 훌쩍 넘긴 한국전쟁까지 공식적으로 끝낼 수 있다면, 노벨상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비핵화의 관계, 주한미군의 미래 등 만만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 이어질 글 : 달라진 김정은은 어떻게 대응할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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