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안 있으면 단두대로…' 등
대통령 부부 겨냥 비방글 노출
작성자 명의는 한동훈·가족들
동명이인 여부 놓고 진실 공방
여론전 번지며 당은 '자중지란'
익명으로 운영되는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가족 이름의 작성자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게시글을 잇달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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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여론 조작 논란'으로 불거진 내분에 신음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가 단합을 주문했음에도 친윤석열(친윤)계와 친한동훈(친한)계 인사들은 의혹을 둘러싸고 연일 여론전을 벌이는 중이다. 내년도 국회 예산안 처리와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 재표결 등 거대 야당을 상대로 주요 현안을 앞두고 여당이 집안싸움에 골몰하고 있어 우려 목소리가 적잖다.
논란은 한 대표와 가족 이름의 작성자가 익명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대거 작성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점화됐다. 친윤계는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인 한 대표에게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며 압박하는 중이다. 한 대표 본인과 친한계 인사들은 이를 "당대표를 끌어내리려는 조직적 움직임"이라고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진실 공방 속에서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내홍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돌발 악재로 부상한 논란의 전모를 들여다봤다.
①익명인데 작성자 검색됐던 '당원 Talk' 게시판
현직 기자 이병준씨가 지난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접속한 뒤 작성자 이름을 '한동훈'으로 검색한 결과 노출된 게시글들. '이병준TV'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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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공론화를 주도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1일 한국일보에 제공한 자료 및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사태는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당원 토크(Talk)'의 시스템 오류로 촉발됐다. 당원 게시판은 실명으로 홈페이지에 가입한 당원만 글을 쓸 수 있는 구조다. 게시판에 글을 쓰면 제목 옆에 보이는 작성자 이름은 '김**' 식으로 성만 표시되고 이름은 가려진다.
그런데 최근 당원 중 누군가가 게시판 검색 기능을 이용해 '한동훈'이라는 이름으로 작성자를 검색하자, '한**'으로 작성된 글들이 검색됐다. 익명 운영의 원칙상 작성자 검색이 불가능해야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정인 검색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달 초쯤 일부 온라인 정치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논란이 됐다. 그러자 다른 당원들이 검색 작업을 통해 한 대표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딸, 장인, 장모 등 이름으로도 당원 게시판에 작성된 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다 지난달 5일 인터넷 매체 파이낸스투데이 소속 기자 이병준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관련 논란을 다루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진행된 실시간 방송에서 이씨가 직접 당원 게시판에 접속해 '한동훈' '진은정(한 대표 배우자)' '진형구(장인)'씨 이름으로 작성자를 검색했더니, 작성 글들이 실제로 검색됐다. 이날까지만 해도 당원 게시판은 작성자 검색이 가능했지만 다음 날부터 기능이 차단됐다고 한다. 한 대표와 가족들 이름으로 작성된 글들도 현재는 삭제된 상태로 알려졌다.
②논란 글 1000여개 중 12개는 '수위 심각'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7월 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려 환영인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호놀룰루=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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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게시판에서 작성자 검색이 가능했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글의 내용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를 향한 인신공격성 비난 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씨가 방송에서 작성자를 '한동훈'으로 검색했을 때 확인된 글들에서 주로 발견됐다. 대표 사례가 지난 7월 14일 0시 15분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글 제목은 "건희는 개목줄 채워서 가둬야되(돼)"였고, 내용은 "그리고도 가만있지 않음 단두대지 머(뭐)"였다. 7월 중순은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의혹' 등으로 여론의 비판을 한몸에 받던 시기였다. 글 의도는 대통령실이 구설에 휩싸인 김 여사를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작성자는 앞서 6일에도 "보수정권 역사상 이런 미친 영부인이 있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부인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걍 무당같다. 미X"이라고 썼다. 윤 대통령 부부와 얽힌 역술인 천공 논란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3일엔 김 여사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구제불능'이라고 했다.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에 출마한 한동훈(왼쪽), 원희룡 후보가 같은 달 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인천=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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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동훈'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지난 7월 23일) 전후로 한 대표와 경쟁했던 친윤계 인사들도 힐난했다. 예컨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해 '개종자들'(7일) '희대의 쓰레기'(19일) 등 표현을 써가며 깎아내렸다. 전대 이후 새 지도부 구성 과정에서 친윤계 정점식 의원이 당 정책위의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정점식 나가 무능한 새X야 알 박지 말고"(26일)라고도 했다.
반면 한 대표와 관련해서는 우호적이었다. "보수 권력과 지지층이 한동훈으로 거의 다 이동하고 있음"(지난달 2일) "그 수모를 당하고도 지지층 위로하고 입 무거운 한동훈"(5월) 등 글을 작성하며 높이 평가했다.
한 대표 배우자 진은정씨 이름으로 작성된 글들도 있었다. 뉴스 기사나 언론사 사설 공유가 대부분으로, 기사의 주된 내용은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이었다. 장인 진형구씨 이름으로 작성된 글들도 패턴이 비슷했다. 다만 지난달 4일에는 윤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명태균씨와 통화하며 선거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제발 정신 차려야 한다. 명태균과의 관계 전모를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직접 비판 의견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다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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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논란과 관련해 한 대표와 가족들 이름으로 작성된 게시글 1,068개를 전수조사한 결과, 한동훈 이름으로 작성된 글 161개 중 12개는 높은 수위의 욕설과 비방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 대표를 제외한 가족 명의의 글은 907건이었는데, 이 중 250개가 사설·신문 기사 공유였고, 194개가 격려 내용이었으며, 나머지는 정치적 견해를 다룬 글들로 밝혀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이씨 유튜브 방송에서 공유된 당원 게시판 글들이 전수조사 대상이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추가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③작성 시간 집중돼 '여론 조작' 의혹 제기
한동훈(가운데)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6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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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논란의 글을 작성한 '한동훈'의 경우 한 대표와 동명이인이라고 밝혔다. 당에는 한동훈이라는 이름의 당원이 8명 있는데, 그중 1973년생(한 대표 생년)은 없다는 근거를 댔다. 이런 이유로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진우 의원은 의혹을 다룬 이병준씨 등 일부 유튜버들을 겨냥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방송에서 이씨는 글 작성자에 대해 "우리가 아는 한동훈, 진은정, 진형구가 맞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대표 본인과 달리 가족들의 경우 작성자가 맞는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이 없는 상황이다. 친윤계가 "가족에게 사실 여부만 확인하면 끝날 논쟁"이라며 한 대표를 압박하고 나선 배경이다.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고영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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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친윤계는 한 대표가 입을 다물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본보 통화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당 사무를 위해 당원 명부를 내부적으로 열람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없다"면서 "작성자 '한동훈'이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논리대로, 가족들 생년과 같은 사람이 당원 중에 있는지 비교하면 끝날 문제"라고 반박했다.
앞서 장 전 최고위원은 이번 당원 게시판 논란을 문재인 정부 시절 여론조작 사건에 빗대 '온가족 드루킹' 사건으로 명명하며 여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10월부터 최근까지 한 대표 가족들 명의의 글 상당수가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는 이유에서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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