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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여자친구 191회 찔러 살해했는데 정상참작…겨우 4200만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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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연구회 13차 심포지엄 ‘피해자와 양형’ 주제로 개최

법무부가 지급하는 범죄 피해자 구조금 합의금과 유사하게 취급

가해자가 변제하면 유리한 정상 참작 비판

헤럴드경제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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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지난 2023년 7월 20대 남성 A씨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를 191회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다. 유가족은 검찰로부터 범죄 피해자 구조금 4273만원을 받았으나 이내 후회했다. 1심 재판부가 징역 17년을 선고하며 ‘유리한 정상’에 검찰이 구조금에 대해 A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했고, A씨가 모두 지급한 점을 적었다. 유가족은 법정에서 “구조금이 양형에 참작되는 걸 알았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범죄 전과가 없고 자수했다는 점만이 유리한 정상에 언급됐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유족에게 진지하게 사과했다고 볼 수 없다”며 “유족들의 피해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으며 유족들이 받은 상처는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렵다”고 적었다.

법무부가 신속한 피해회복을 위해 지급하는 ‘범죄 피해자 구조금’이 ‘합의’와 유사하게 취급돼 가해자의 감형을 돕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의 권리로 보장하는 구조금이 감형 이유가 되지 않도록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가 선지급, 가해자에 후청구…해외는 고정적 예산 확보
배상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일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개최한 ‘피해자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범죄자가 내는 벌금이나 과징금, 범칙금, 과태료 등에서 재원을 확보해 범죄피해자기금 재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 피해자 구조금 제도(이하 구조금)는 범죄 행위로 사망·장해·중상해를 입은 피해자나 유가족에게 국가가 일정 금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법무부는 범죄자들이 낸 벌금의 8%를 재원으로 하는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 일부를 구조금으로 사용한다.

검찰은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 구조금을 지급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방식으로 재원을 보충하고 있다. 법원은 가해자가 구상금을 지급할 경우 양형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기도 한다. 검찰이 사후적 청구를 통해 받아내는 구조금이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내는 합의금이나 공탁금처럼 인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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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가 지난 2일 ‘피해자와 양형’을 주제로 제13차 심포지엄을 열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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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연구위원은 구상금 지급이 양형 요소로 반영되는 이유가 ‘재원 부족’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원 부족을 우려한 법원이 가해자의 구조금 납부를 ‘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며 “벌금에서 범죄 피해자 보호기금으로 전입하는 비율을 올리거나 과징금, 범칙금, 과태료 등 준벌금 성격을 가진 제재에서 재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 미국의 범죄 피해자 기금은 벌금, 보석금, 벌칙금, 특별 부과금 등으로 조성된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정부 예산로 범죄 피해자 보상 프로그램 재원을 책정한다.

구조금 사후 청구 방식이 물론 범죄예방 관점에서도 유효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배 연구위원은 “구조금을 (가해자에게) 청구하는 것은 불법행위를 할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범죄예방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하지만 대부분 가해자가 지급 능력이 없어 청구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구조금을 청구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보다 확실한 재원 마련을 통해 피해자를 구조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가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지급된 범죄피해구조금액 493억 6815만원 중 검찰이 구상권을 청구해 보전받은 액수는 49억 4594만원으로 10%대에 그쳤다.

감형 이유 “글쎄”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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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7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범죄피해자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92인, 찬성 291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개정안은 피해자의 생계곤란 여부와 관계없이 구조금을 지급하고, 상해·중상해 피해자가 구조금 신청 이후 사망할 시 유족 구조금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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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구조금 지급이 실제 양형에 반영되는지 고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최준혁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유리한 정상, 불리한 정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느 정도로 작용했는지 알기 어렵다”며 “법관이 선고형을 정할 때 일반양형인자, 특별양형인자와 양형기준에 제시되지 않은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형웅 의정부지방법원 판사 또한 통계적 연구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 판사는 “주취감경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실제 ‘주취’를 이유로 감경을 했다고 볼만한 판결은 많지 않았다”며 “판결 이유에 구조금 지급이 언급됐다고 해서 실제 양형에 감경을 미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무적인 관점에서 판결문에 적힌 ‘구조금 지급’의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다.

구조금을 ‘피해 회복’이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피해자의 기본권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미선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 피해자의 구조금 청구권은 ‘생존권적 기본권’으로 가해자와 무관한 개념”이라며 “피해자가 구조금을 받아도 이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이행한 것일 뿐 가해자의 피해복구나 손해배상과 구별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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