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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횡설수설/김승련]기로에 선 ‘힘센 기관’ 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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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예산안 가운데 검찰, 경찰, 감사원,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겠다고 나섰다. 국회 예결위에서 표결까지 마친 상태다. 특활비는 영수증 증빙 없이 쓰는 현금성 예산으로, 이들 4곳을 합치면 특활비 삭감액은 200억 원에 가깝다. 또 소액이 아니면 영수증이 필요한 특정업무경비(특경비)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이걸 포함하면 잘려나간 예산이 1000억 원에 이른다.

▷경찰 수사로 예를 들어보자. 불법 사채조직 정보원에게 ‘현금 수고비’를 줬다면 특활비에서 충당한다. 지방 출장 때 신용카드로 렌터카를 빌렸다면 특경비에 해당한다. 두 항목 모두 큰 틀에서 수사비의 일부인 것이다. 실제로 현금이 종종 쓰인다고 한다. 예컨대, 함정수사 차원에서 마약대금 500만 원을 비트코인으로 지급하거나, 성 착취물 사이트에 가입할 때가 그렇다. 민주당의 삭감 결정은 실제로도 특활비를 설명한 대로만 쓰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검찰, 감사원 등 ‘힘센 조직’일수록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쓸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그 근거로 검찰의 특활비 내역에서 찾아낸 반복적 현상을 거론한다. 매달 같은 액수가 지급되는 경우가 잦아 ‘검사들끼리 나눠 갖기’가 의심되고, 추석이나 설 직전에 사용액이 늘어나니 떡값이 아니냐는 의문인 것이다. 2017년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특활비로 돈봉투를 돌린 일이 드러난 뒤 검찰은 관행을 바꾸겠다고 다짐했지만,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검찰은 올 9월 국정감사 때 특활비 내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 가이드라인을 따랐다지만 내용이 부실했다. 수령인과 금액만 남겼을 뿐 날짜와 용도 등은 지운 채였다. 민주당은 “기관장 금일봉처럼 안 썼다는 걸 입증만 하면 예산을 주겠다”고 했지만, 뾰족한 설명이 없었다. 문제는 국회도 특활비(9억 원)와 특경비(185억 원)를 내년에 책정했는데, 외유성 짙은 의원들의 해외 출장 등에 이 돈을 쓴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수혜자인 국회 예산은 물론이고 형사재판으로 얽힌 대법원의 특활비는 손대지 않았다.

▷민주당은 특활비 삭감을 국민 세금의 투명성 확보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수사받고 감사받은 기관들을 겨냥한 분풀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 성격이 무엇이건, 국민 세금을 200억 원 가까이 현금으로 쓰는 관행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검찰과 경찰은 지난 수년간 특활비와 특경비 총액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도, 현금성 특활비는 줄이고 영수증이 필요한 특경비는 늘려 왔다고 설명한다. 이번 ‘삭감 정국’의 결론과 무관하게, 현금 사용은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부패를 방지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길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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