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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성 잃은 비상계엄, 국민에 대한 반역이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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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만에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긴급 담화를 통해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면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수부대가 국회에 진입해서 시민들과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다.



국회는 4일 새벽 1시께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을 의결했고, 윤 대통령은 오전 4시30분께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의결이 나오자, 군이 대통령을 따르지 않고 국회 결정을 존중한 게 대통령의 계엄 번복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신속한 계엄 해제 요구와 군·경찰의 이성적인 판단이 평화적으로 사태를 마무리짓게 한 셈이다. 하마터면 유혈 사태로 번질뻔 했던 대통령의 독재적 발상이 합법적으로 제어됐다는 점에서 몹시 다행스럽다. 민주주의가 그만큼 단단하게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1979년과 80년 신군부 세력이 ‘반국가세력의 내란 획책’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지 45년이 지났다. 그런데 21세기에 똑같은 이유로, 그것도 군부 아닌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은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경제·사회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자부해왔다. 국민의 자긍심을 산산조각낸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행동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판단력과 이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밖엔 없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비상계엄 이유는 헌법이 규정한 계엄 사유에 전혀 해당하질 않는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한해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이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인가. 국회 상황 때문에 공공의 안녕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돼서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선 이를 회복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2017년 수백만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왔을 때도 계엄령의 필요성을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의 정권 핵심인사 외엔 없었다. 그런데 2024년 12월에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공공 안녕질서가 무너지고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직 대통령과 그 주변 몇몇 측근의 심각한 착각과 공포심의 발현이라고밖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야당이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고, 지금은 감사원장과 서울지검장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것을 계엄 선포의 사유로 삼았다. 그러나 감사원장과 서울지검장 탄핵의 출발점이 정녕 어디인지 대통령은 모른단 말인가. 명백한 과오가 있는 각료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자신과 부인을 지키기 위해 국회 특검법안을 거부한 스스로의 잘못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 재임 2년반 동안 거부권을 행사한 횟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건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삼권분립과 헌법 정신을 무시하고 국가 분열을 획책한 건 윤 대통령 자신이다.



긴급담화문을 내기까지 누구와 상의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예비비와 특수활동비 감액 삭감을 두고 ‘대한민국을 마약천국 민생치안 공황 상태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탄핵소추와 감액 예산을 두고 ‘명백한 반국가행위’라고 주장했다. 탄핵소추와 예산안 처리는 국회의 고유한 권한이다.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기도 하지만, 이런 이유로 비상계엄을 꺼낸다니 윤 대통령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명백한 반국가행위는 윤 대통령이 저지른 셈이다.





그래도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뿐 아니라 국민의힘 일부 국회의원까지 합세해서 계엄령의 즉각 해제를 요구한 건 시의적절했다. 물리력을 가진 군과 경찰이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국회 결의를 중시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윤 대통령은 이제 대통령의 자격을 상실했다. 국회는 국민과 국가를 배신한 윤 대통령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정부 관료와 군, 경찰은 국회 결의를 따르는 게 헌법을 준수하는 길임을 명심하고 대통령실의 어떤 부당한 지시도 거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오직 국민이란 사실을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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