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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투데이 窓]신뢰의 비대칭성과 인간관계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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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 수 없고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혈연, 가족 등 선천적 관계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면서 맺는 후천적, 선택적 관계다.

중국에선 관계를 '관시'라 부르는데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사람간 신뢰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관시는 개인, 조직간 우호적 인맥이며 상호신뢰와 이해, 상대방의 지원요청이 있을 때 응답의무까지 포함하는 끈끈한 관계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받는 신뢰관계는 지속성의 기반이다. 좋은 관계인지 아닌지는 어려운 상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서양 격언처럼 좋은 관계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중요하다.

우리는 많은 친구, 지인과 관계를 맺지만 어떤 친구가 좋고 어떤 관계가 좋은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계들을 들여다보면 비대칭인 경우가 많다. 어떤 친구는 도움만 주고 반대로 도움만 받는 친구도 있다. 누구를 도와주는 게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닐지라도 관계가 지속되려면 주고받는 게 어느 정도 대칭을 이뤄야 한다. 권한 있는 자리에 있을 때는 더 많은 관계가 형성된다. 날 찾는 사람,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많고 비대칭 관계도 많이 형성되지만 대부분 자리와 권한을 매개로 이뤄진 관계다. 그 자리를 떠나는 순간 관계는 리셋된다. 소원해지거나 연락하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다. 수십 년간 이어온 관계도 비대칭인 경우가 많다. 인간적으로 친한 친구 중 어떤 이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정작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안 주는 이도 있다. 도와주고 싶어도 능력이 못 미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관계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베프'(베스트 프렌드)라 부르는 절친한 친구는 서로 진정성 있게 생각하며 주고받는 대칭적 관계로 지속된다. 서로에 대한 도움이 등가일 순 없어도 신뢰와 애정의 등가는 필요하다. 국가간 관계인 외교도 마찬가지다. 사도광산 이슈로 불거진 한일관계를 보면 비대칭적 관계로는 우호적 신뢰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사회학자 조지 호만스는 친구와 연인관계를 포함해 모든 관계는 보상과 비용을 바탕으로 한 인간행동이라는 '교환이론'을 주창했다. 가령 A와 B가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건 서로에게 긍정적 보상이 있기 때문인데 A는 B와 함께 있으면 즐거움(보상)을 얻고 B는 A로부터 지지와 관심(보상)을 얻는다. 이런 보상이 없으면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비용)만 커져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칭성인데 문제는 관계의 기반인 신뢰가 비대칭성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뢰를 쌓으려면 긍정적 행동을 많이 해야 하고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걸 잃는 건 한순간이고 부정적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좋은 이미지의 정치인이나 기업이 순식간에 신뢰를 잃고 추락하는 경우를 왕왕 접한다. 신뢰연구자인 심리학자 폴 슬로빅 교수는 신뢰가 왜 비대칭인가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은 대중매체, 입소문 등으로 쉽게 전달되고 확실히 각인된다. 둘째, 부정적 내용은 긍정적 내용보다 신뢰에 미치는 이미지가 강하다. 셋째, 부정적 사실은 긍정적 사실보다 일반화하기 쉽다. 넷째, 신뢰의 결여는 이후 관계에서 신뢰를 저하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일수록 더 진심을 다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다, 가령 상대방이 좋아하는 10가지를 하기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1가지를 안 하는 게 낫다. 시간을 내서 찾아오는 사람과 시간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은 구분해야 한다. 신뢰관계의 지속에는 상호 노력과 진정성이 요구된다.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며 비대칭 관계는 언제라도 쉽게 무너진다. 침대도 과학이지만 관계도 과학이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필로 스페이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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